“유혹을 어떻게 피할지 걱정마라. 나이가 들면 유혹이 당신을 피할 것이다.” - 미국 코미디언 조이 애덤스
이제 여오현(42·현대캐피탈)마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남녀부를 통틀어 프로배구 최고령 선수인 그가 실력에서 무너졌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여오현은 2019~2020 시즌에도 여전히 서브 리시브 성공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록입니다. 여오현은 이번 시즌 상대 서브를 총 645번 받아 세터 머리 위로 정확하게 339번 띄우는 동안 서브 에이스를 29번 허용했습니다. 이러면 서브 리시브 성공률 48.1%가 나옵니다.
남자부 서브 리시브 성공률 1위 선수 기록이 50%를 넘지 못하는 건 이번 시즌이 처음입니다.
네, 아직 시즌이 끝난 건 아닙니다. 그저 정규리그 경기를 다시 열 수 있을지 불투명할 뿐입니다.
다시 정규리그 경기가 열린다는 전제로 시즌 평균 기록을 가지고 계산하면 여오현이 남은 네 경기에서 서브 리시브 성공률 66.3%는 넘겨야 시즌 기록을 50% 이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기록도 아닙니다. 참고로 이전 15 시즌 동안 남자부 서브 리시브 성공률 1위 선수 평균 기록이 68.2%였습니다.
1위 기록이 50%가 안 된다는 건 리그 평균 기록은 진작 50% 밑으로 떨어졌다는 뜻.
프로배구 원년 63.1%였던 리그 평균 리시브 성공률은 2015~2016 시즌 48.2%를 기록하면서 50% 선 아래로 내려왔고 이번 시즌 현재는 35.8%까지 내려온 상태입니다.
세상에 리그라는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선수는 없습니다. 리그 기록이 떨어지면서 여오현 개인 기록도 같이 내려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야구에서 플러스(+) 기록을 계산하는 것처럼 리그 평균 기록과 여오현 개인 기록을 가지고 ‘서브 리시브 성공률 +’를 계산하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올 시즌 현재 여오현의 서브 리시브 성공률 +는 134.4. 리그 평균보다 34.4% 좋은 기록을 거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프로 원년부터 16 시즌을 소화하면서 여오현이 이보다 높은 서브 리시브 성공률 +를 기록한 건 2010~2011 시즌(137.9)뿐입니다.
이 정도면 ‘회춘(回春)’이라는 표현을 써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이에 대해 여오현은 “나는 코트에서 하는 일이 서브 리시브밖에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서브 리시브는 원래 자신이 있었다. 자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니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자평했습니다.
시즌이 흐르면서 현대캐피탈은 서브 리시브가 필요 없는 상황 그러니까 자기 팀이 서브를 때는 구자혁(22)에게 리베로를 맡기는 일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디그(상대 득점을 막아내는 수비) 부담이 줄어 더욱 서브 리시브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오현은 “자혁이 덕분에 체력 관리를 하면서 편하게 운동하는 중”이라며 “자혁이와 같이 오래오래 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캐피탈에서 ‘여오현 45세 현역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타던 무렵 한 상대팀 지도자는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평했습니다.
여오현이 배구 선수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모습이 대견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여오현도 기량이 떨어질 테니 상대팀 지도자로서 ‘땡큐’를 외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언제가는 그런 날이 올 겁니다. 그 누구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렇다고 여오현이 먼저 욕심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불혹(不惑)도 넘긴 마당에 욕심에 좀 흔들리면 어떻습니까.
그와 함께 나이 들어 온 배구 팬 한 사람으로서 여오현이 세월 앞에 진짜 무릎을 꿇는 날이 하루라도 더 늦게 찾아오길 바랍니다.
거꾸로 모든 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은 하루라도 더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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