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0’은 공존만으로도 파트너의 존재감을 훌쩍 키운다. 1과 짝을 이뤄 10 혹은 100, 나아가 무한대로 값을 늘려나갈 수 있다. SK 와이번스에선 베테랑 김강민과 채태인(이상 38)이 0으로 이뤄진 등번호를 달고 후배들에게 적극 힘을 실어준다.
등번호 0인 김강민의 가치는 백업 외야수 이상이다. 2019 시즌 팀에서 6번째로 많은 127경기를 소화한 그는 ‘짐승’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리그 정상급 수비력을 자랑한다. 1번(179타수), 6번(115타수), 7번(78타수) 타순을 중점적으로 오가며 팀 내 득점 5위(54점), 타점 7위(50점)를 올린 쏠쏠한 활약은 덤이었다.
후배들은 고민이 생기면 곧잘 김강민을 찾는다. 수비와 타격의 경계는 없다. 중견수 자리를 이어받을 노수광은 물론 한동민 등 주축 선수들 대다수가 김강민에게 정신·기술적으로 도움을 받으며 험난한 시즌을 치러낸다.
채현우, 최지훈 등 신진급 외야진에게도 아낌없이 노하우가 전수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1차 스프링캠프에서 김강민과 룸메이트로 지낸 채현우는 “야구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이런 방법도 좋다’고 조언해주시거나, 잘못된 부분들을 짚어주시기도 했다”며 “선배를 보며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오래오래 함께 뛰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지난해 2차 드래프트로 합류한 채태인은 벌써 분위기 메이커가 됐다. 특유의 유쾌한 성격으로 웃음꽃을 피우는 중이다. “모두들 즐겁게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아울러 신인의 자세로 돌아갔다. 그는 “제이미 로맥이 1루를 맡는다. 나는 백업으로서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동생들의 기를 살려주는 일에도 능숙하다. 채태인은 SK에서 생소한 등번호 00번을 쓴다. 익숙한 17번은 기존 주인인 노수광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수광이는 주전 선수가 아닌가. 자신의 번호에 자부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내린 결정이다. 아울러 “프로 입단 동기인 강민이가 0번을 단다. 항상 붙어 다닐 생각으로 00번을 골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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