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 같았던 홈구장의 마운드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길었던 재활의 터널 막바지, 이상화(32·KT 위즈)는 조금씩 빛과 익숙해지고 있다. 스스로가 나태해질 때 채찍질했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 1년 반을 돌아온 수원에서의 투구 KT의 팀 훈련이 한창이던 3월 31일 수원 KT위즈파크. 1루측 불펜에서 이상화는 30구의 불펜피칭을 소화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불펜피칭의 한 장면이었지만 이상화에게는 모처럼 1군에서 공을 던졌다는 자체가 의미 있었다.
경남고를 졸업한 이상화는 ‘전국구 에이스’로 불리며 2007년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기대치를 현실로 바꾸지 못했고, 결국 2016 시즌 후 2차드래프트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KT 이적 첫해는 ‘대박’이었다. 2017년 70경기에서 66이닝을 소화하며 4승3패6세이브4홀드, 평균자책점 3.95를 기록했다. 그해 전체 투수 중 최다 등판 공동 3위였다.
이듬해 탈이 났다. 이상화는 2018 시즌 자신의 공을 던지지 못했고, 결국 7월 수술대에 올랐다. 오른 팔꿈치 뼛조각과 석회질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2019 시즌 복귀가 예상됐지만 과정은 생각보다 더뎠다. 결국 지난해 2군에서 14경기에 등판했을 뿐, 1군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 불펜피칭은 남다른 의미였다. 2일 만난 이상화는 “모처럼 수원에서 공을 던졌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 “나보다 강한 아내 덕에 버텼다” 재활 과정을 거치는 선수들은 입을 모아 “죽을 만큼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30대 베테랑들에게는 이 과정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갈수록 고참들이 설 자리가 없는 가운데 이상화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쯤 1군에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조급함이 오히려 재활에 큰 장애물이 됐다.
지난해 실전 후 통증을 느껴 피칭을 중단하기를 몇 차례. 10월 즈음부터 통증이 잡히길 시작했다. 변화는 몸이 아닌 마인드에서 나타났다. 이상화는 “재활 내내 팔꿈치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어느 순간 ‘이 정도 통증은 안 아플 때도 달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결과가 달라졌다. 100%를 추구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끝없는 재활의 터널에서 흔들리던 이상화를 잡아준 건 아내였다. 무작정 응원하는 대신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주며 자극을 줬다. 이상화는 “아내가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다. 시쳇말로 ‘심지가 굳다’는 표현이 어울린다”며 “내가 흔들릴 때면 따끔한 질책도 해줬다. 그 덕에 버틸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쉼표 없이 꾸준히 공을 뿌리고 있다. 겨우내 구승민, 김유영 등 롯데 시절 후배들과 몸을 만들며 자신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팔꿈치에 대한 스트레스를 완벽히 떨친 게 겨우내 가장 큰 소득이다. 재활을 위해 잘 먹으며 찌웠던 살도 이제 6㎏ 가까이 감량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실전모드’다.
● 힘이 됐던 이상화, 힘이 되는 하준호 하지만 2017년의 이상화로 돌아간다고 해서 주축 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 지난해 부임한 이강철 감독은 강력한 척추의 힘을 바탕으로 KT에 ‘강철 불펜’ 야구의 색깔을 입혔다. 주권, 김재윤, 이대은 등 준수한 불펜 자원들이 즐비하다. 이상화도 “지난해 저녁마다 KT 야구를 봤다. 한때 ‘나도 안 아팠으면 저기서 함께 뛰었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며 “불펜이 정말 좋아져 다시 아무 것도 없는 도전자 입장이다. 내가 할 일만 꾸준히 하다보면 기회가 오리라 믿고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경남고 때부터 롯데, KT까지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고 있는 1년 후배 하준호의 존재도 힘이 된다. 경남고 시절 투수였던 하준호는 프로 입단 후 야수로 전향한 뒤 지난해 투수로 다시 1군 마운드에 섰다. 이상화는 “야수였던 (하)준호에게도 ‘투수하면 잘할 것 같다’고 격려한 적이 있다”며 “잘할 줄 알았다. 이제 준호를 보고 나 역시 좋은 자극을 받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