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55) 전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의 차남 허훈(25·KT)이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농구연맹(KBL) 센터에서 열린 2019~2020 프로농구 시상식에서 프로 데뷔 3시즌 만에 국내선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정규리그 MVP는 아버지도 타보지 못한 상이다. 허 전 감독은 1997~19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에 패해 준우승을 하고도 경기 마다 빛나는 투혼을 발휘해 MVP를 수상했다.
허훈은 기자단 111표 중 63표(56.8%)를 받았다. DB 김종규(29)는 47표를 얻었다. 당초 DB의 공동 1위에 큰 기여를 한 김종규가 유리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뛰어난 활약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허훈에게 더 많은 표가 몰렸다.
연세대 출신으로 2017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T에 입단한 허훈은 아버지의 후광을 뛰어 넘어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아버지(188cm)보다 훨씬 작은 키(180cm)의 허훈은 데뷔 초반 몸싸움이 거칠고 공수 전환 속도가 빠른 프로 무대에서 고전했다. ‘국내용’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도 붙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허 전 감독은 그런 허훈을 발탁한 뒤 많은 비난을 받았고, 그 뒤에서 허훈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허훈은 아버지를 꼭 닮은 강한 승부욕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스스로 위기에서 빠져 나왔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 35경기에 출전해 평균 14.9득점(국내 선수 1위)에 7.2도움(전체 1위)을 기록하며 특급 야전 사령관 노릇을 제대로 했다. 근력을 키운 덕분에 수비 능력도 향상됐다.
자신감이 커지면서 농구 대통령의 아들다운 존재감을 십분 발휘했다. 지난해 10월 DB와의 경기에서 3점슛 9개를 연속으로 성공해 KBL 타이기록을 세웠고, 2월 KGC전에는 24득점, 21도움으로 KBL 최초의 ‘20-20’을 달성했다. 베스트5와 이번 시즌 가장 빛난 플레이를 펼친 ‘플레이 오브 더 시즌’ 상 수상자로도 선정된 허훈은 “한 경기 한 경기 팀 승리를 위해 뛰었는데 아무래도 팬들에게 보여준 ‘임팩트’가 커서 MVP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다음 시즌에는 우승을 해서 MVP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허 전 감독의 장남인 DB 허웅(27)까지 인기상을 수상하며 허씨 집안이 경사를 맞았다. 허 전 감독은 “어제 훈이를 만났는데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집에서 쉬다 수상 소식을 들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방송 촬영 등 내 스케줄 때문에 그동안 훈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웅이와 함께 맛있는 고기를 사줘야겠다. 이제 훈이는 부상 없이 팀에 기여하는 게 숙제”라고 말했다.
한편 외국선수 MVP는 SK를 공동 1위로 이끈 자밀 워니가 받았다. 감독상은 DB 이상범 감독이 수상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로 DB에 입단한 김훈이 신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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