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K리그 킥오프]코로나로 69일 지각 개막 프로축구
수원전 후반 교체투입 ‘라이언 킹’… 23분 뒤 머리로 결승골 전설 입증
해외 중계로 미들즈브러 시절 소환… 당시 유니폼 입고 인증샷 팬도
멈췄던 K리그 축구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록 그라운드를 보며 함께 소리치지 못한 팬들의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기분 좋은 설렘이 공존한 전주의 밤이었다.
지난 시즌 K리그1(1부) 챔피언 전북과 축구협회(FA)컵 우승팀 수원의 2020시즌 K리그 개막전이 열린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예정보다 69일 늦게 열린 개막전은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지난해 전북의 안방 평균 관중은 1만3937명(2위). 하지만 이날은 녹색 물결을 이룬 전북 팬들이 응원가 ‘오오렐레’를 목청껏 부르는 육성 응원은 들리지 않았다.
축구의 복귀를 눈앞에서 보지 못한 팬들에게도 낯선 하루였다. 전북 팬 박경수 씨(35)는 “‘집관(집에서 관람)’하는 동안 목 관리를 잘해 관중석에 발을 딛게 되는 날에 함성을 폭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장에서 600m 거리에 있는 수제비 식당. 이곳은 골 폭죽 소리가 들리면 식사를 하던 팬들도 다 같이 환호하는 명소다. 가게 직원은 “80명이 가득 찼어야 할 식당이 한산하다. 유관중이 됐을 때 축구 열기가 다시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K리그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에 따라 전날 취침 전부터 3차례 발열 검사를 통과한 뒤 경기에 나섰다. 양 팀 선수들은 2m가량 거리를 둔 채 입장했다. 접촉 최소화를 위해 악수와 킥오프 전 스크럼은 자제했다. 물통에는 등번호 등을 적어 서로 섞이는 것을 막았다.
킥오프 휘슬이 울린 후 전북 구단은 스피커를 통해 이따금씩 녹음된 응원을 틀어 썰렁할 수 있었던 분위기를 바꿨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골이 터지지 않아 다소 답답했던 수중전의 영웅은 K리그 최고령인 전북의 전설 이동국(41)이었다. 후반 15분에 교체로 투입된 그는 후반 38분 손준호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1-0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터뜨렸다. 득점 후 그는 동료들과 ‘덕분에 챌린지 세리머니’를 하며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2012,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로 개막 첫 골을 터뜨린 이동국은 “프로 데뷔 이후 무관중 경기는 처음이다. 팬이 없는 축구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과 개막을 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 하루였다”고 말했다.
개막전이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되면서 이동국의 ‘흑역사’로 불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미들즈브러 시절을 소환한 해외 팬도 있었다. 루크라는 이름의 영국 팬은 트위터에 이동국의 미들즈브러 유니폼 ‘인증샷’을 올렸다. 그는 “이동국을 다시 보게 돼 기쁘다. 12년 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셔츠를 꺼내 입었다”고 썼다. 2006∼2007, 2007∼2008시즌 미들즈브러에서 뛴 이동국은 리그컵 등에서 2골을 넣었지만 EPL에서는 무득점에 그친 뒤 국내로 돌아왔다. 마침 이 경기는 영국 BBC가 홈페이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생중계했다. 이동국은 “영국에 내 팬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생존 신고’를 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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