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KBO리그를 하루 한 경기씩 생중계 중인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의 이 예상은 반만 맞았다. ESPN이 기대하던 팬들의 열광적 응원은 없지만 KBO리그 응원단은 여전히 단상 앞에 선 채 함성을 지른다. 응원단과 팬들은 ‘랜선 응원전’이라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메아리는 없지만 집에서 지켜보는 팬들의 화답을 믿고 있다. 허공을 향한 KBO리그 응원단장들의 움직임이 값진 이유다.
● 응원단·팬·스태프, 1인3역 해내는 응원단!
5일 일제히 개막한 KBO리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당분간 무관중 체제다. 하지만 홈팀 응원단과 치어리더들은 단상에 오른다. 구단은 각자의 온라인 채널을 통해 랜선 응원전을 생중계한다.
상황은 좋을 수가 없다. 응원의 기본은 팬들과의 호흡이다. 메아리가 사라진 야구장에서 응원을 주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원정팀의 응원이 없어 ‘응원전’도 불가능하다. 구단들은 관중이 정원의 50%까지 입장할 수 있을 때 원정팀의 응원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한재권 두산 베어스 응원단장은 “무관중 응원은 모두에게 생소한 환경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는다는 각오였다. 무관중 응원은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다. 팬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혼자 파도타기를 하고, 깃발을 흔든다”고 설명했다. 박소진 두산 치어리더도 “고요함을 채우기 위해 우리끼리 더 열심히 소리를 지른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주일 KT 위즈 응원단장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더 많은 팬들이 접속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고 있다. 허전함도 있지만 그 속에서 재미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허공에 마이크를 대고 함성을 질러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민망함과의 싸움이다. 조지훈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은 “남들에게는 이상해보일 수 있어도 집에서 지켜보는 팬들의 리듬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나부터 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응원하는 팬이 있다!
해외 언론에서도 무관중 응원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KBO리그 출신 에릭 테임즈(밀워키 브루어스)는 “메이저리그 경기장에서 목소리가 가장 큰 건 ‘맥주보이’다. 하지만 KBO리그 구장은 다르다”며 관중 없는 곳에서 응원전을 펼치는 이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없기 때문에 소통은 필수다. KT는 응원단상 앞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100개로 쪼개진 화면에 접속한 팬들의 실시간 모습이 노출되므로 선수들도 그라운드에서 팬들이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롯데도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들이 팬들의 실시간 채팅을 읽으며 소통한다. 신규 응원가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는 점은 장점이었다.
김주일 단장은 “팬들은 집에서 유니폼을 입고 응원용품을 세팅하는 등 각자의 야구장을 만들었다. 그걸 지켜보니 나이가 마흔 살이 넘었는데도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만원관중 때보다 이번 랜선 응원이 더 짜릿했다”고 돌아봤다.
김상헌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장은 “아무래도 경기 상황에 따라 접속자 추이가 달라진다. 실점을 하면 많은 팬들이 랜선 응원방에서 나간다”며 “선수들의 눈에는 팬들의 응원이 보이지 않겠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프로스포츠는 팬이 있기에 존재한다. 응원단의 존재 이유도 결국은 팬이다. 조지훈 단장은 “팬들이 있어야 덜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있도록 조금씩만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소진 치어리더는 “팬들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야구장을 지키고 있겠다”고 다짐했다. 한재권 단장도 “팬들은 우리의 자부심이다. 언젠가 찾아올 관중 입장의 그날, 잠실구장을 가득 채워 강남 전체를 울릴 정도로 큰 함성을 질러주길 부탁드린다. 그때까지 에너지를 잘 비축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