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쉬운 선택이네요. 결과론이죠.”
지금은 은퇴한 과거 ‘홈런왕’ 출신의 한 야구인에게 선택지 2개를 주고 ‘현역 시절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주어진 선택지는 ‘슬럼프’와 ‘결과론’이었다. 이 야구인은 단 한 번의 주저함 없이 “당연히 결과론”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144경기. KBO리그는 국내 프로스포츠 중 가장 많은 경기를 한 시즌에 소화한다. 일주일에 6경기가 열리고, 매일 매일 경기 결과가 야구팬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9회까지 진행되는 정규경기 속에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판단과 선택이 수없이 오간다. 특히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감독이라면 그 결정의 무게는 한층 더 무겁다.
감독이 내린 단 하나의 선택으로 그날 경기의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기도 하는 것이 야구다. 이 때문에 감독의 선택에는 상당한 책임감이 뒤따른다. 성공적 선택을 하면 명장 소리를 듣지만, 실패하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결과를 보고 난 이들이 ‘과정’ 속에 있던 감독의 선택을 맹비난하는데, 이것이 바로 결과론의 무서움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 지휘봉을 잡은 허문회 감독(48)은 개막 5연승을 내달렸다. 지난해 최하위를 기록한 팀의 초반 질주에 팬들의 관심도 쏠렸다. 그러나 이후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2연속 루징 시리즈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허 감독 역시 결과론의 비난을 피할 순 없었다.
17일 대전 한화전 10회초 무사 1·2루 기회서 허 감독은 딕슨 마차도에게 보내기번트를 지시했다가 이후 다시 강공을 맡겼다. 결과는 3루수 방향 병살타. 결국 롯데는 한화에 연장 11회 4-5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허 감독은 19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을 앞두고 “한 점 승부를 보는 것보다 두 점 이상을 내서 승기를 잡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결과론이지만 내 불찰이다”며 당시 상황을 담담히 설명했다. 상당히 의연한 결과론 대처였다.
롯데는 19일 KIA전에서도 2-9로 패했다. 추격 기회에서 적시타가 나오지 않았고, 마운드 위 투수들은 추가점을 경기 후반에도 내줬다. 허 감독은 이날도 투수 기용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정규시즌 장기 레이스 운용에서 이러한 비난은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야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적어도 지금처럼 의연하게 결과론에 대처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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