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는 ‘클러치 히터’, 연거푸 삼진을 잡아내며 상대 타자를 제압하는 ‘에이스’. 야구에서 가장 조명을 많이 받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프로 팀이 이러한 스타들로만 이뤄질 수는 없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조연이 강한 팀이 진짜 강팀으로 분류된다. 송민섭(29·KT 위즈)의 활약이 팀에 소금 같은 이유다.
KT는 2013년 창단 당시 트라이아웃을 통해 22명을 뽑았는데 그 중 아직까지 살아남은 선수는 송민섭이 유일하다. 20일까지 1군 통산 성적은 191경기에서 타율 0.242(128타수 331안타), 5타점, 36득점. 경기수보다 적은 타수가 드러나듯 송민섭의 주 역할은 대수비, 대주자다. 지난해 생애 첫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장면에는 조연에 머물렀다.
이강철 KT 감독은 그런 송민섭이 고맙다. 특히 19일 수원 한화전서 더욱 그랬다. 13-1로 앞서던 KT는 불펜진의 난조로 13-10까지 쫓겼다. 9회 이대은이 마운드에 올랐지만 선두 이성열에게 홈런을 내주며 2점차. 분위기가 완전히 한화 쪽으로 쏠렸다. 1사 1루에서 이해창의 타구가 우익수 뒤쪽 워닝트랙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온 송민섭은 펜스에 강하게 부딪히며 타구를 잡아냈다. 한화 선수단은 모두가 입을 벌린 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좀처럼 티를 내지 않는 송민섭도 한참 동안 불편함을 호소할 만큼 충격이 적잖아보였다.
이 감독은 20일 한화전에 앞서 “(송)민섭이에게 정말 고맙다. 대수비를 주로 맡기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슈퍼캐치 1~2개씩 해줬다. ‘난 이 자리에 전부를 건다’고 생각해야 전날 같은 몸을 사리지 않는 호수비가 나온다”며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실제로 송민섭의 생각도 같았다. 이튿날 확인해보니 가슴과 등에 피멍이 잔뜩 들어있었다. 송민섭도 충돌 순간 어느 정도 통증이 남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거 잡고 죽자’는 생각으로 펜스로 뛰어든 것이다.
“프로 선수 중 주전 욕심이 없는 선수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주전으로만 팀이 구성되지는 않는다. 지금의 나는 ‘슈퍼 백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대수비, 대주자, 대타로 역할을 잘 해내면 외부에서도 ‘아니, KT는 송민섭이 백업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슈퍼백업이 생겨야 팀이 강해진다. 내게 ‘다음’은 없다. 매 순간이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몸을 사리지 않겠다.” 송민섭의 각오다.
송민섭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13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서는 4-4로 맞선 10회말 1사 1·2루에서 권희동의 중전안타를 잡아내 홈으로 달려들던 나성범을 보살로 처리했다. ‘이거 못 잡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정확한 송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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