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을 앞둔 두 선수의 답변은 정반대였다. 세계 최정상급인 두 선수의 스타일 차이를 확연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매치플레이에 대해서도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솔레어)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반면에 세계랭킹 3위 박성현(27·솔레어)은 “상대 선수 한 명만 이기면 된다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그러나 희망 상금을 묻는 질문에는 “반반씩 나눠 가지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라며 입을 모았다.
두 선수의 희망사항이 이뤄진 걸까. 고진영과 박성현이 24일 인천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파72)에서 열린 이벤트 대회 ‘현대카드 슈퍼매치 고진영 vs 박성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둘은 총상금 1억 원을 5000만 원씩 나눠 가졌다. 현대카드가 주최하고 두 선수의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스포츠마케팅이 주관한 이 대회는 싱글 매치플레이 스킨스 게임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반 갤러리 없이 관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명승부가 이어졌다.
경기 전 각오대로 고진영은 꾸준함이, 박성현은 한 방이 빛났다. 하이라이트는 17번홀(파3)이었다. 16번홀까지 박성현은 상금 2400만 원을 획득해 4000만 원을 확보한 고진영에게 크게 뒤져 있었다. 하지만 박성현은 이 홀에서 약 6m 버디를 성공시키며 단숨에 2600만 원을 거머쥐었다. 동 타로 마친 16번홀 이월 상금(800만 원), 17번홀 상금(800만 원)은 물론이고 이 홀을 고진영이 ‘찬스 홀’로 지정하면서 추가된 상금 1000만 원까지 한 방에 따낸 것.
순식간에 역전을 당했지만 고진영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약 5m 거리의 버디를 성공시키며 1000만 원을 획득해 거짓말 같은 무승부를 완성했다. 앞서 고진영은 13번홀을 이기며 박성현이 12번홀에서 사용한 ‘찬스 홀’ 상금 1000만 원을 가져갔다. 고진영은 이날 경기에서 총 18개 스킨 중 박성현(8개)보다 많은 10개 스킨을 따냈다.
약 4시간 15분간 이어진 이벤트 매치는 두 선수의 서로 다른 경기 스타일도 잘 보여줬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그린 적중률 1위(79.56%)인 고진영은 정교함을 무기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6위(275.55야드)인 박성현은 장타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나섰다. 이동할 때도 고진영은 캐디와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반면 박성현은 주로 혼자 걸으며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고진영은 흰색, 박성현은 검은색 옷을 입고 ‘흑백 대결’을 펼쳤다. 후반에 날씨가 쌀쌀해지자 이번에는 고진영이 검은색 티, 박성현이 흰색 조끼를 위에 걸쳤다.
경기 뒤 박성현은 “18번홀 진영이의 버디 퍼트를 앞두고 속으로 ‘들어가면 최고(의 시나리오)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깔끔하게 성공시키더라.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진영도 “(무승부가 나와서) 짜고 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웃고는 “앞으로 현명한 골프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무관중 경기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고진영은 “아무도 박수를 안 치는데 인사를 하니 느낌이 어색했다. 빨리 필드 위에서 많은 분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이날 획득한 상금을 밀알복지재단, 박성현은 서울대 어린이병원 후원회에 각각 기부했다.
이벤트 대회를 마친 두 선수는 국내에서 미국 상황을 살피며 7월 재개 예정인 LPGA투어 준비를 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국내 대회 출전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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