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 신동 서채현(17·신정여상)의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아마 이렇게 적혀 있을 듯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스포츠가 멈춰있는 동안에도 서채현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클라이밍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힘든 클라이밍 훈련이 끝나면 쉬운 코스의 암벽을 타며 ‘힐링’을 했다. 이틀 훈련하고 하루 쉬는 스케줄인데도 매일 체육관을 찾았다. 휴식이 꼭 필요해 암벽을 타지 못하는 날에도 체육관에 나와 동료들과 수다라도 떨었다. ‘빨간 머리 앤’ 캐릭터가 나오는 컬러링북에 색을 칠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정적인 취미’다. 이쯤 되면 땅에 서 있는 것보다 벽에 매달려 있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6세 때부터 타온 암벽은 이제 서채현을 세계로 향하게 해주는 문이다. 그는 지난해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리드 월드컵에서 4연속 우승하며 리드 부문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3월에는 도쿄 올림픽 출전권도 일단 손에 넣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IFSC는 4월 중국 충칭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취소하고 아시아 국가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남녀 선수인 천종원과 서채현에게 출전권을 1장씩 배분했다. 하지만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기존의 출전권은 사라졌다. IFSC는 아시아선수권을 12월 중국 샤먼에서 치르기로 하고 이 대회에 다시 도쿄행 티켓 1장을 걸었다.
손에 들어왔던 티켓을 놓쳐서 아쉬울 법하지만 서채현은 의연했다. 오히려 클라이밍 선배이자 우상인 ‘암벽 여제’ 김자인(32)과 다시 티켓을 놓고 겨룰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그는 “올해 3월 티켓이 확정됐을 때는 왠지 모르게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실력으로 싸워서 이겨낸 티켓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에는 남녀 각 20명씩 출전한다.
1년의 준비 기간이 더 생긴 것은 희소식이다. 처음 정식종목이 된 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에는 남녀 콤바인에 금메달이 1개씩 걸려 있다. 콤바인의 세부 3개 종목(리드 볼더링 스피드) 가운데 리드가 주 종목인 서채현은 스피드 기록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10초대 기록을 8초대까지 단축하는 게 목표다. 서채현은 “스피드는 반복 훈련으로 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종목이라 더 준비할 시간이 생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서채현은 ‘올림픽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마저 클라이밍을 꼽았다. 너무하다 싶지만, 여기서 말하는 클라이밍은 스포츠클라이밍이 아닌 자연암벽 등반이다. 서채현은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기 전까지 방학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세계의 유명한 자연암벽을 찾았다. 딸이 평생 행복하게 암벽을 오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이었다. 지난해 2월에는 스페인 시우라나의 41m 고난도 자연암벽인 ‘라 람블라’에 도전하기도 했다.
“정해진 루트를 오르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바위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작년에 라 람블라를 완등하지 못했는데 꼭 다시 도전할 겁니다.”
차가운 바위를 움켜쥐는 감촉과 계곡의 서늘한 바람. 올림픽이 끝나면 도전할 자연암벽 등반의 매력을 떠올리며 서채현은 오늘도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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