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시즌 한화를 가을무대로 이끌었던 한용덕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7일 NC전 패배 직후 뒤도 안 돌아보고 덕아웃 밖으로 나간 한 전 감독은 정민철 한화 단장을 찾아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 2군을 이끌던 최원호 감독이 당분간 감독대행을 맡는다.
또 한번의 실패. ‘국민감독’ 김인식 감독(2005~2009년)이 한화를 이끈 이후 2010년대 한화는 감독들의 무덤이 됐다. 통산 최다승(1567승), 한국시리즈(KS) 우승만 10차례를 달성한 코끼리 김응용 감독(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2013~2014시즌), 2000년대 중반 SK왕조를 구축한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일본 소프트뱅크 코치 고문·2015~2017시즌)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화려했던 경력에 깊은 상처만 났다. 특히 김응용 전 감독에게는 한화 역대 최저승률 감독(91승 162패 3무 승률 0.360)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한화 재단인 천안북일고 출신에 현역시절 한화 ‘원팀맨’으로 활약했던 ‘성골’ 한 전 감독이 2017시즌 후 감독직을 맡았을 때 기대가 컸다. 자리보전에 급급해하며 팬들의 비난을 받은 다른 성골과 달리 고생을 자처하며 성공을 맛본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대학(동아대) 시절 야구를 그만두고 트럭운전을 하다 연습생(배팅볼 투수)으로 빙그레(한화 전신)에 입단해 통산 120승을 거둔 전설로 올라선 한 전 감독은 은퇴 후에도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 한화에서 코치 등 지도자 수업을 하다 2012시즌 감독대행을 맡아 승률 ‘5할 이상’(14승 13패 1무)을 기록한 그는 이후 두산 코치가 됐다.
한화에 남아도 차기든 차차기든 한화 감독직이 보장됐지만 연고 없는 팀에서 ‘KS 우승’ 스펙을 쌓아왔다. 팬들은 한용덕표 ‘잡초정신’과 그가 배운 ‘강팀’ 두산의 노하우가 패배의식에 젖은 후배들을 일깨우길 바랐다.
첫 해였던 2018시즌 한용덕호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유계약선수(FA) 등 전력보강이 없었지만 있는 자원들을 적재적소에 쓰며 접전을 대부분 승리로 만들었다. 과거보다 기량이 쳐진 국가대표 출신 2루수 정근우(38·LG) 대신 신인 정은원(20)을 중용하고 기량을 키우며 성적과 세대교체라는 ‘어려운’ 두 마리의 토끼를 능숙하게 다잡는 모습도 보였다. 그해 한화는 시즌 3위(77승 67패 승률 0.535)로 2007시즌(3위) 이후 11년 만에 가을무대에도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듬해 세대교체의 기수인 하주석(26)이 무릎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이용규(35) 등 노장들과 갈등이 폭발하며 한 전 감독은 얇은 선수층으로 버티기 힘든 냉정한 현실을 마주해야했다. 순위는 9위(58승 86패 승률 0.403)로 추락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하주석이 부상에서 복귀하고 이용규와의 갈등도 봉합했지만 다시 주축들이 부상을 당하며 한화 역대 단일시즌 최다 연패인 14연패도 경험했다. 2018시즌부터 강행한 ‘세대교체’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노장들과 갈등설도 다시 돌았다. 결국 감독이 못 버텼다.
한화는 새 수장을 맞을 준비를 하겠지만 영웅이 온다한들 흐름이 바뀔지 알 수 없다. 세대교체에 힘을 쏟았다고 하지만 팀의 중심은 여전히 노장이고 노장의 ‘에이징 커브(나이대별 성적 변화 곡선)’는 언제 수직하강을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실제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이른 김태균(38·타율 0.156), 송광민(37·0.217), 이성열(36·0.226) 등 주축들은 시즌 초부터 전과 다르게 부진한 모습이다. 이들의 ‘은퇴결심’을 앞당길 만큼 치고 올라오며 선배들을 벼랑으로 내몰만한 똘똘한 신예도 없다. 감독 하나보다 팀의 시스템, 곳곳에 깊게 스며든 ‘성골 우선주의’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한화표 허슬, 화수분 야구도 먼 훗날 이야기다.
한화의 응원가 중에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응원가가 있다. ‘(한화) 이글스(팬이)라 행복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화 팬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이 노래는 성적부진이라는 현실의 고통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찾는 불법 마약 같은 개념이 됐다. 부를 때 잠시 행복할 뿐 이후 더 큰 슬픔이 밀려온다. 한화 팬들은 진짜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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