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유영원 서울컨벤션고 감독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막 대회에서 탈락한 패장의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게 된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버스에 야구 장비들을 실으면서도 끊임없이 지난 경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선수들 의 얼굴에서 묘한 설렘이 읽혔습니다.
서울컨벤션고는 현재 진행 중인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41개 참가팀 중에 막내입니다. 올 1월 창단을 했으니 팀을 꾸린 지가 채 6개월이 안 됩니다. 전체 팀원 24명 중 신입생 8명을 제외한 16명이 모두 전학생입니다. 3학년은 1루수 박지성(18) 단 한 명뿐입니다. 서울, 경기 지역 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백업 선수들이 서울컨벤션고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손발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제대로 된 팀 훈련을 할 형편이 못 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 신생팀 서울컨벤션고가 보여준 활약은 놀랍습니다. 대회 개막전인 성지고와의 경기에서 6-0으로 승리했습니다. 팀의 첫 공식경기를 전국대회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이어진 경기항공고과의 경기에서는 양 팀 도합 25안타(서울컨벤션고 12개, 경기항공고 13개)의 난타전 끝에 15-13으로 이겼습니다.
16일 우승후보 강릉고와의 16강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4회말까지 1-9로 콜드게임 패배 위기에 처했던 서울컨벤션고는 5회에만 3번타자 겸 포수 강산의 105m 우월 만루홈런을 포함 5점을 내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상대를 바짝 추격했습니다. 팀 사상 첫 홈런입니다. 끝내 7-11로 패했지만 강릉고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투구 수 제한으로 에이스 김진욱(18)을 등판시킬 수 없었던 강릉고는 투수만 5명을 투입시키며 진땀을 흘렸습니다. 각 팀의 재목들을 살피는 프로팀 스카우트들도 서울컨벤션고의 깜짝 활약에 놀라워했습니다.
선수들의 활약도 좋았습니다. 주장 강산은 이번 대회 타율 0.500, 1홈런, 8타점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팀의 리드오프이자 중견수인 조원빈도 타율 0.583, 2타점에 4도루로 상대를 흔들었습니다. 투수 박현진은 2경기에서 6과 3분의 1이닝 동안 36타자를 상대하면서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습니다. 8실점을 했지만 모두 비자책점입니다. 강산과 조원빈은 지난해 휘문고, 박현진은 인천고에서 뛰었던 2학년 전학생입니다.
선수들의 자신감 또한 이번 대회 큰 수확입니다. 유영원 감독은 “첫 대회 출전이다보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로 시작을 했는데 의외로 성과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경기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걱정을 했는데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겁 없이 자유롭게 해낸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습니다.
무엇보다 여름밤 목동야구장 하늘을 갈랐던 팀 역사상 첫 만루홈런과 그때 더그아웃의 분위기를 서울컨벤션고 선수들을 잊지 못할 겁니다. 신생팀의 유쾌한 반란을 보여줬던, 그리하여 야구의 매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던 서울컨벤션고 선수들의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아, 글을 마치기 전에 소개하고 싶은 팀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93년 해체 이후 26년 만인 지난해 재창단한 경기상고입니다. 서울컨벤션고와 마찬가지로 서울, 경기 지역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린 경기상고는 1회전 인천고에 2-1 승리한데 이어 2회전에서는 부산 지역의 야구 명문인 경남고를 2-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16일에는 경주고에 5-4 승리를 따내며 8강에 진출했습니다. 7회에만 5점을 뽑으며 승부를 뒤집었습니다.
서울고에서 전학온 경기상고의 주전 유격수 유준서는 “전국의 어느 팀보다 우리가 이기려는 마음이 강하다. 어떤 팀이 와도 어떻게든 들이받아서 이기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경기상고는 서울컨벤션고를 꺾고 올라온 강릉고와 18일 8강에서 만납니다. 준결승행 티켓은 두 팀 중 단 한 팀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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