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자가) 계속 나오네요.”
경기 전 진행되는 사전 인터뷰 자리에 나온 염경엽(52) SK 와이번스 감독은 끊이지 않는 부상 소식에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보다 더 작아진 염경엽 감독의 목소리는 경기 중 일어날 안타까운 상황의 예고였다.
염경엽 감독은 지난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더블헤더(연속경기) 1차전 도중 덕아웃에서 쓰러졌다. 프로야구 경기 도중 감독이 실신하는 사상 초유의 사고였다.
다행히 큰 불상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치열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감독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가 알 수 있는 사건이다.
두산의 2회초 공격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SK 덕아웃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염경엽 감독이 쓰러진 것. 적장 김태형 두산 감독이 달려나왔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들것에 실린 염경엽 감독은 구급차로 옮겨져 병원으로 향했다.
SK 구단 관계자는 “응급 상황에서 급하게 MRI·X-레이·CT 촬영 및 혈액검사 등 몇 가지 검사를 받은 결과 불충분한 식사와 수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심신이 매우 쇠약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 측에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 입원 후 추가 검사를 요청했다. 오늘 입원할 예정”이라며 “박경완 수석코치가 경기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염경엽 감독은 평소에도 식사량이 많지 않기로 유명하다. 시즌 중에는 간단한 군것질거리로 끼니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고, 영양제 등으로 부족한 영양을 보충한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시즌 중 팀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입맛을 잃어버린다.
특히나 지난 시즌 다 잡았던 우승을 놓치면서 염경엽 감독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다. 두산이 만들어낸 역대 최다 승차(9.5경기) 뒤집기 우승의 희생양이 됐고, 플레이오프에서는 과거 몸담았던 키움 히어로즈에 3연패로 탈락했다.
절치부심하며 올 시즌을 준비했지만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안방마님 이재원이 3경기만에 사구로 손가락이 골절되는 등 주전들의 부상이 이어졌다. 에이스로 점찍고 데려온 외국인 투수 닉 킹엄은 단 2경기에 등판해 2패를 기록한 뒤 아직까지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시즌 초반 10연패를 한 차례 경험한 SK는 최근 다시 긴 연패의 늪에 빠져 있었다. 7연패 중에 염경엽 감독이 쓰러졌고, 그 경기에서도 6-14로 패해 8연패가 됐다. 연속경기 2차전에서 7-0으로 승리, 어렵사리 연패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다.
당분간 박경완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SK를 이끌게 된다. 박경완 수석코치는 “감독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는데 수석코치로서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감독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선수단을 잘 추스르겠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안타까워하긴 마찬가지다. 7이닝 완벽투로 연패 탈출의 선봉에 선 문승원, 투런홈런 포함 멀티히트로 타선을 견인한 최정은 “마음이 무겁다”고 입을 모았다.
염경엽 감독은 쓰러지기 하루 전, 고참 선수들에게 고기를 사주며 선수단을 격려했다. 이 사연은 문승원의 수훈선수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 팀의 반등을 위해 애썼던 사연이 공개되면서 염경엽 감독의 실신은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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