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선동열(전 해태 타이거즈)만 3차례(1986·1987·1993년) 밟아본 0점대 평균자책점(ERA). 그리고 딱 한 명에게만 허용된 4할 타율(1982년 MBC 청룡 백인천·0.412). KBO리그 모든 선수들의 숙원사업이다. 시즌 초반 무서운 페이스로 기록을 쌓아가던 구창모(23)와 강진성(27·이상 NC 다이노스)은 지난주 나란히 이 고지에서 내려왔다. 아쉽긴 하지만 개막 2개월째까지 위용을 이어갔다는 자체가 이들의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증명한다.
구창모는 25일 수원 KT 위즈와 더블헤더 제2경기에 선발등판해 4이닝 5실점(4자책점)을 기록했다. 1회부터 수비의 도움을 못 받으며 집중타를 허용했다. 이 경기 전까지 0.82로 리그 유일의 0점대였던 ERA는 1.37까지 뛰었다. 무실점을 전제로 23이닝을 더 던져야 ERA를 다시 0점대로 끌어내릴 수 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발걸음을 걸어온 셈이다.
같은 날 강진성의 4할 타율도 깨졌다. KT와 더블헤더 제1경기서 4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며 0.407이던 타율이 0.394까지 떨어졌다. 최근 6경기서 타율 0.125(24타수 3안타)로 슬럼프가 길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42경기서 기록한 타율은 0.374(139타수 52안타)로, 이 부문 1위 자리도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두산 베어스·0.378)에게 내줬다.
하지만 ‘기록이 깨졌다’보다 ‘지금까지 기록을 만들어왔다’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강진성은 지난해까지 7시즌 동안 1군 117경기서 타율 0.253(194타수 49안타), 3홈런, 20타점이 전부였던 타자다. 올해 42경기 만에 자신의 통산 안타, 홈런, 타점 기록을 모두 넘어섰다. 레그 킥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만들어낸 성과다. 상대 투수들의 집요한 분석이 더해지며 잠시 슬럼프에 빠졌지만, 이를 이겨낼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구창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NC 좌완 최초로 시즌 10승(7패) 고지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미완의 대기’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 자신감을 완전히 찾으며 벌써 6승무패다. 한 번의 미끄러짐이 있었지만, 사실 30경기 이상 등판하는 선발투수가 모든 경기에서 100%의 퍼포먼스를 내는 경우가 더 드물다. 이동욱 NC 감독도 이들에 대해 “커가는 과정이다. 약간의 조정기인데,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며 감쌌다.
‘손해 볼 게 없다네. 난 정말 괜찮아요. 그리 슬프진 않아요. 주머니 속 용기를 꺼내보고 오늘도 웃는다.’ 인디듀오 옥상달빛의 ‘없는 게 메리트’의 가사 일부다. 구창모와 강진성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대기록을 향해 달려가던 발걸음에 잠시 쉼표가 찍혔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것만으로도 박수 받기에 충분하다. 재정비한 뒤 다시금 주머니 속 용기를 꺼내 우직한 걸음을 내딛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