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준 한국열린사이버대 축구부 감독(55)은 “지역민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축구 클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유럽을 대표하는 잉글랜드 프로축구팀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한국 청소년 축구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중심에 이 감독이 있다. 그는 2011년 말 한국 최초의 중고교 클럽 축구팀 ‘하남FC’를 창단해 대한축구협회에 정식 등록했다. 이전까지 재능이 있는 유소년 축구 선수는 축구 명문 학교에 진학해야만 축구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가 시작한 방식은 학교 팀 위주로 운영되던 국내 축구계에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많은 지역 클럽 축구팀이 생겨났고, 현재 18세 이하 고교생들이 뛸 수 있는 클럽팀만 73개(2019년 기준)나 된다.
축구 명문 서울 동북중고교를 거쳐 국민대를 졸업한 이 감독은 1990년 동북중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03년 서울 장훈고 창단 사령탑으로 취임한 뒤 9년간 지도했다. 두 팀에서 수확한 우승컵이 20개가 넘고, 그가 키워낸 프로 선수도 김은중(23세 이하 대표팀 코치), 양동현(성남FC), 문선민(상주 상무), 이영재(강원FC) 등 60명을 넘는다.
이 감독이 클럽 축구팀을 고집한 이유는 유럽식 축구 문화를 국내에 심기 위해서였다. 2002년부터 10여 년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유럽을 방문할 때마다 지역 클럽 축구팀에 대한 지역민들의 열렬한 사랑에 감동받았다”며 “팀이 잘하든 못하든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는 지역민들의 사랑이 지금의 유럽 축구를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에선 학교 팀에 매몰돼 같은 학교 출신만 관심을 갖는 ‘동네 축구팀’ 수준에 머물렀다. 그는 “하남FC 때 우리 경기가 있으면 하남고 학생은 물론이고 지역민들도 찾아와 응원했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역 공동체 형성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면 지역 클럽 축구팀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감독은 초등학교인 12세 이하 축구를 예로 들었다. 현재 12세 이하 지역 클럽 축구팀은 192개로 수적으로 학교 팀(133개)을 압도한다. 그는 “이전에는 초등학교 4,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면 요즘에는 유치원 때부터 집에서 가까운 클럽에서 축구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지는 대학 입시와 연계돼 중고교로 넘어가면서 명문 학교 축구팀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하지만 합숙 금지 등 교육 방침이 바뀌면서 학교 팀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축구하는 지역 클럽 축구팀들의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조만간 둘의 영향력이 뒤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감독은 3년 전부터 한국열린사이버대를 맡은 뒤 또다시 새로운 실험을 진행 중이다. 열린사이버대 축구팀의 운영 방식을 바꾼 것이다. 축구팀 운영에 대한 대학측의 배려로 고교 졸업 후 대학과 프로에 가지 못한 선수들에게 다시 도전 기회를 줬다. 대학 팀이지만 ‘야신’ 김성근 전 프로야구 한화 감독이 프로에서 밀린 선수들을 위해 만들었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를 모델 삼아 축구 선수들 재도전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열린사이버대 팀은 1년 만에 전국대회 16강에 올랐고 2018, 2019년 연속 8강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U리그에서는 강호 고려대를 2-1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감독은 또 3년 전 경기 하남에서 남양주로 하남FC의 본거지를 옮기고, 팀 이름도 ‘진건 KJ FC’로 바꿨다. 하남에 신도시가 생기고 학생 수가 많아지면서 클럽 팀이 늘어나자 하남종합운동장을 필요한 때 사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은 경기장이 턱없이 부족하고, 건물 지하에 인조잔디를 깔고 축구를 하는 상황이라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매일 오후 6시 이후엔 생활체육팀에 경기장 우선 사용권을 주는 것도 걸림돌이 됐다. 그는 “교육부는 학교 수업을 마친 뒤 훈련을 하라고 하지만 정작 저녁엔 경기장을 사용할 수 없다”며 “이런 상황이 바뀌어야 한국 스포츠가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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