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는 올 시즌 개막에 앞서 팬 응원문구 공모전을 실시했다. 프런트와 선수단이 심사해 가장 기발한 문구를 보내준 팬에게는 응원 선수와 만남 및 애장품 증정을 약속했다. 팬들은 다양한 선수에게 기발한 응원문구를 보냈는데, 1위로는 배제성(24)과 통신기업 KT의 기가인터넷을 센스 있게 연관지은 팬이 선정됐다. 구단은 선수단 출퇴근 동선인 1루 덕아웃 앞 복도에 응원문구들을 전시하며 선수의 자부심 향상을 기대했다.
그런데 배제성이 프런트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1등 당첨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향해 응원문구를 보내준 다른 팬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결국 배제성은 옷장을 털어 지난해 자신이 착용했던 유니폼을 몽땅 내놓았다. KT는 올 시즌에 앞서 유니폼 디자인을 바꿨다. 지난 시즌 처음 1군 선발로 도약했던 배제성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던 과거 유니폼이지만, 본인이 간직하는 것보다는 고마운 팬들에게 전하는 게 더 뜻 깊을 것으로 판단했다. 향후 관중입장이 이뤄지면 그 팬들을 모두 초대해 만남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야구가 뭐라고, 배제성이 뭐라고”
“팬들의 응원 덕에 힘을 냈다”는 말은 흔히 들을 수 있지만 사실 응원의 효과는 형체가 없다. 선수 개개인마다 느끼는 게 다르다. 9일 연락이 닿은 배제성에게 팬의 의미를 묻자 진심어린 답변이 돌아왔다.
“난 원래 야구를 잘하는 선수도, 주목받는 선수도 아니었다. 지난해까진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바닥에 있다가 지금 약간이나마 올라온 선수다. 배제성이라는 사람이 야구 좀 잘하고 성적 좀 낸다는 이유로 과분한 응원을 받고 있다. 그게 너무 감사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보답해드리고 싶다.”
팬들은 배제성의 소셜미디어(SNS)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잔뜩 쌓인 메시지를 보며 울컥했던 적도 있다. ‘요즘 회사 일이 잘 안 풀려 너무 우울했는데 배제성의 경기를 보고 힘을 냈다’는 말은 선수의 책임감을 끌어올렸다.
배제성은 “야구가 뭐라고, 배제성이 뭐라고 누군가에게 응원과 힘이 될까. 예전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정말 큰 힘이 된다”며 “부진했을 때 욕이 담긴 메시지가 오면 상처도 받지만, 반대로 격려해주시는 메시지를 보면 ‘정신 차리자’고 다짐하게 된다. 야구를 잘해 연봉이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찰나의 순간 큰 감정을 선물 받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버티기로 거둔 5승, 치고 나갈 때는 온다!
팬들의 사인 및 사진 요청을 거절한 적 없는 배제성이지만, 사랑에 보답하는 가장 현명한 길은 성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배제성은 9일까지 올 시즌 11경기에서 5승2패, 평균자책점 3.60으로 KT 선발진의 에이스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투구에 만족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내 스스로 이겨낸 경기가 하나도 없다. 지난해엔 내가 만족할 만큼 경기를 끌고 나갔는데, 올해는 속구 구속이 너무 떨어졌다. 맘에 들게 던진 경기가 한 번도 없다. 컨디션이 올라올 시기가 분명히 올 테니 그때까지 버티자는 마인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속구 평균구속은 지난해 143㎞에서 올해 141㎞까지 떨어졌다. 그 대신 슬라이더의 투구 비율을 10% 가까이 올렸는데, 이게 주효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버티는, 선발투수의 최대 덕목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강철 KT 감독은 지친 배제성에게 보름의 특별휴가를 줬다. 8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그는 일주일 정도 불펜피칭 없이 캐치볼로 컨디션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적잖은 휴식기간 중 속구의 위력을 다시 끌어올린다면 지금보다 더 압도적인 성적을 낼 수 있다.
일찌감치 휴가가 예고됐기 때문에 7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선 젖 먹던 힘까지 짜냈고, 6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푹 쉬고 돌아와 벤치의 배려, 그리고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겠다는 다짐이다.
옷장을 털어 자신의 유니폼을 내놓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실력, 그리고 팬 서비스 모두로 자신을 응원해주는 이들에게 보답할 방법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배제성의 고민은 유니폼을 벗는 그날까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