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놀이’ 화제 31세 KT 조용호
대학 4학년때 부상으로 운동 접고 중국집 주방 보조 등 생계형 알바
SK 연습생 거쳐 무상 트레이드… 이제야 주전 꿰차고 ‘독한 야구’
“그라운드에 있었어야 했는데….”
17일 NC전 이후 미세한 고관절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라 TV 중계로 경기를 지켜봤다는 조용호(31·KT·사진)는 팀의 2연패를 바라보는 심경을 이같이 밝혔다. 선두 NC를 만나기 전 6연속 위닝시리즈의 상승세를 타던 KT는 조용호가 뛴 첫 경기에서 12회 연장 끝에 3-3으로 비겼지만 이후 2경기에서 모두 지며 위닝시리즈 행진을 마감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는 조용호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올 시즌 20일 현재 KBO리그 3할 타자는 모두 19명인데 이 중 5명이 KT 소속이다. 조용호는 외국인 선수 로하스(0.387)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높은 타율(0.326)을 기록 중이다.
조용호의 진가는 ‘타석당 투구 수’에서도 빛난다. 올 시즌 조용호는 타석당 평균 4.63개의 투구를 이끌어냈다. 리그 1위다. 프로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가 이 자료를 제공한 2014 시즌 이후로도 가장 높다(2위는 2015년 당시 롯데 최준석의 4.51개). 상대 투수의 진을 빼놓다 출루하는 조용호 덕에 후속 타자들도 수월하게 투수를 상대할 수 있다.
팬들은 이를 ‘용호놀이’라 부른다. 이전만 해도 ‘용규놀이’는 한화 이용규(35)의 전매특허였다. 조용호는 “초등학교, 중학교 선배인 이용규 선배님과 비교돼 영광이다. 실투는 깔끔하게 쳐야 하는데, 그것도 파울을 칠 때가 많다. 부족해서 그리 된 거다”라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조용호의 끈질긴 승부욕은 거친 야구인생을 살아온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단국대 시절까지 프로를 꿈꿨던 ‘평범한’ 조용호는 4학년 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프로행이 좌절됐다. 이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해 재기를 노렸지만 다시 부상으로 무산됐다. 2012년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야구를 그만뒀고, 이후 야구와 무관한 일을 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싫어 신문·우유·피자배달, 중국집 주방보조 등을 전전했다.
하지만 조용호는 2014년 봄, 2년 만에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프로가 목적이었다기보다 그냥 야구가 하고 싶어서”였단다. 모교 단국대에서 중독에 가까울 만큼 훈련에 몰입했는데 당시 1차 지명 후보자를 살피러 학교에 온 SK 스카우트의 눈이 그에게 꽂혔다. 그해 그는 ‘육성선수(연습생)’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나이로 26세 때다.
2017시즌 1군에 잠시 데뷔했지만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듬해엔 무상으로 트레이드(SK→KT)되는 굴욕도 맛봤다. 그래도 유니폼을 입은 것 자체가 만족스러워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단다. 지난 시즌 손바닥 부상을 당한 강백호(KT)의 공백을 잘 메웠던 그는 올 시즌도 백업으로 시즌을 맞았지만 실력으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서른이 넘어 전성기를 맞은 조용호의 눈빛은 반짝이다 못해 타오르는 느낌을 준다. 20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한 그는 “야구를 그만둘 부상이 아니라면 바로 뛸 것”이라며 목에 힘을 줬다.
인터뷰 말미에 조용호는 “팀의 창단 첫 가을야구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하다 박경수(36)를 언급했다. “경수 형이 데뷔(2003년) 후에 한 번도 가을야구 경험이 없어요. 이전 팀(LG)에서 두 번 기회가 있었는데, 군대에 있었거나 엔트리에 못 들었대요. (한국 나이) 서른일곱인데…, ‘진짜’ 세워드려야 해요. 하하.” 그의 재치 속에 절실한 다짐이 녹아 있었다.
○ 조용호는…
△ 생년월일: 1989년 9월 9일
△ 키 몸무게: 170cm, 75kg
△ 출신교: 성동초-잠신중-야탑고-단국대
△ 투타 포지션: 우투좌타 외야수
△ 프로 경력: 2014년 SK 육성선수 입단, 2017년 4월 2일 1군 데뷔(KT전), 2018년 말 KT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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