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몸으로 알아요. 그라운드 위에서 점점 타자들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한계임을 깨닫고 이젠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 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한계’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의 지난 야구인생이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의 연속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프로 데뷔 이듬해(2005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고 2007년에는 버거씨병을 앓으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버거씨병은 손이나 발끝에서부터 통증이나 경련이 느껴지고 심해지면 팔 다리 전체로 확대되는 병이다. 그럼에도 2010년 보란 듯 돌아와 10년을 더 뛰었다. 지난달 은퇴를 선언한 한화 투수 송창식(35)의 이름 뒤에 늘 ‘투혼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홈런원정대’ 촬영 현장에서 만난 송창식은 “이번 시즌 스프링캠프 때부터 많은 고민을 했다. 6개월 가까이 고민을 해서 결정을 내렸다. 주변에서 괜찮냐고 묻는데 아직 실감이 안 난다. 그저 휴가를 받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송창식은 현재 청주 자택에서 머물며 20개월 된 쌍둥이 아들 육아에 주력하고 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에게 지난 3년은 야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송창식은 “예전에는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거나 컨디션이 떨어져도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회복이 됐는데 최근 3년 동안은 내 마음먹은 대로 공을 던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저것 해봐도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아직도 프로 데뷔 경기(2004년 4월 8일 SK전)가 기억에 생생하다는 부상 이전을 “겁 없이 시키는 대로 공을 던졌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복귀 이후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했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송창식은 “부상 이후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원하는 대로 공도 던지고 내 야구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창식은 프로 통산 43승 41패 22세이브 51홀드 평균자책점 5.31의 성적을 거뒀다. 눈부신 성적은 아니지만 데뷔시즌인 2004년에는 한 차례 완투승, 2013년에는 20세이브 고지를 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을 묻자 송창식은 “기록보다는 선발, 마무리, 추격조, 필승조 안 해본 역할이 없다는 게 더 큰 의미가 크다. 어느 자리도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던 것이 나의 장점이자 프로생활을 할 수 있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름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일명 ‘벌투 논란’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2016년 4월 14일 두산과의 경기에 팀의 두번째 투수로 등판한 송창식은 4와 3분의 1이닝 동안 9피안타(4피홈런) 등으로 12실점(10자책점)을 했다. 계속된 실점에도 팀에서 교체를 해주지 않자 벌투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송창식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라면서도 “일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기회가 있을 때가 좋지 나는 하고 싶은 데 기회가 없으면 더 힘들다. 그때는 정말 신나서 했다. 재밌어서 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단 한번도 가을야구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송창식은 “이상하게 팀이 잘 할 때 나는 꼭 2군에 있었다. 팀이 11년 만(2018년)에 다시 가을야구를 했을 때도 2군에 가 있던 걸 보면 나랑 가을은 잘 안 맞는 것 같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팀이 잘할 때 중심이 돼서 좋은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현재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팀 동료들에게 “상황이 좋지 않지만 팬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해주길 바란다”고 격려의 메시지도 전했다.
제2의 야구인생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송창식은 “지금까지 해온 게 야구밖에 없다. 아직 결정된 부분은 없지만 유소년 교육에 도전해보고 싶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는 것도 목표”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송창식은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야구인생을 돌아봤다. 구단은 조만간 송창식의 은퇴식을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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