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김정훈]10분만에 일방해체된 ‘35년 전통’ 이천시청 정구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1일 03시 00분


김정훈·스포츠부
김정훈·스포츠부
“해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멍’해져서 그 뒤로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명구 이천시청 소프트테니스(정구)팀 감독은 얼마 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35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천시청 정구팀이 하루아침에 팀 해체 통보를 받은 것이다. 팀이 없어지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천시청은 감독과 선수들에게 이유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이천시청이 산하에 있던 정구와 트라이애슬론, 마라톤 등 직장운동경기팀 3개 팀을 올해 12월 31일까지만 운영하고 해체하겠다고 밝힌 뒤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정구팀 해체는 정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천시청 정구팀 역사는 우리나라 정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5년 창단 후 각종 대회를 휩쓸었고, 국가대표 선수도 꾸준히 배출해 왔다. 현재도 이천시청 정구팀 소속 선수 7명 중 4명이 국가대표 출신이다. 이천시청 정구팀은 지난해 100회 전국체전에서도 단체 1위와 복식 1위를 했다. 국내 대회뿐만 아니다. 이천시청 정구팀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며 효자 종목 노릇을 했다. 지난해 열린 제23회 아시안컵 히로시마 국제정구대회에서도 단체 2위를 차지했다.

이천시청은 이런 역사와 실력을 가진 팀을 없애면서 명확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심지어 이천시청 정구팀 감독과 선수들은 ‘알림사항이 있으니 모이라’는 일방적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해체를 통보받았다. 이천시청이 밝힌 이유는 시민들의 생활체육활성화와 체육인구 저변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종목을 선정해 새롭게 창단하기 위해서였다.

감독과 선수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실업정구연맹(회장 정인선)은 이달 말에 이천시청에 탄원서도 제출할 예정이다. 연맹 관계자는 “일방적 해고 통보와 한국 정구계 발전에 이바지한 이천시청 정구팀 해체는 부당하다는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1994년 이천시청에 선수로 입단한 뒤 24년간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하며 평생을 이천시청 정구팀에 바쳤다. 이천시청 정구팀 선수들 역시 자신의 청춘을 함께한 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생겼다.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선택이 너무 쉽게 결정된 것 아닌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정구#이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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