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횡성 베이스볼테마파크에서 열린 ‘2020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덕수고를 상대로 13-6으로 패해 준우승한 세광고의 김용선 감독은 경기 후 덤덤히 소감을 밝혔다. 198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 이후 37년 만에 전국대회 결승에 오른 세광고는 ‘야구명문’ 덕수고의 벽 앞에 1982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이후 두 번째 우승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김 감독의 평가처럼 초반이 아쉬웠다. 0-1로 뒤진 2회초 2사까지 잘 막은 세광고는 이후 볼넷, 안타로 2사 2, 3루 위기를 맞은 뒤 포수의 포구실책으로 2점을 헌납했다. 풀이 죽은 세광고는 이후 실책으로 1점을 더 내줬고 기세가 오른 덕수고는 1학년생 심준석의 6이닝 1실점 호투 속에 6회까지 9점을 내며 9-1로 여유롭게 앞섰다.
세광고에게 ‘졌지만 잘 싸웠다’는 표현이 어울렸던 이유는 경기 후반 모습 때문이다. 우승이 코앞으로 다가온 덕수고는 9회말 1사 이후 에이스 장재영(3학년)을 마운드에 올렸다. 에이스가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포수와 활짝 웃으며 포옹하는 모습은 여느 우승팀들이 그리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또한 ‘서울지역 1순위’로 키움의 1차 지명을 받은 장재영으로서도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 명성에 걸 맞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날 장재영의 체면은 제대로 구겨졌다.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직후 150km가 넘는 공을 앞세워 삼구삼진을 잡았지만, 2사 2루에서 연거푸 장타 2방을 맞으며 순식간에 2점을 내줬다. 세광고 2학년생 류주열이 장재영으로부터 뽑아낸 안타는 야구장 왼쪽 담장 상단을 직접 때릴 정도로 큰 타구였다. ‘기세’가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고교야구의 특성상 세광고가 초반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트로피의 주인은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세광고의 막판 기세는 ‘갑자기’ 달아올랐다.
송진우, 장종훈 등 KBO리그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스타를 배출한 세광고는 2000년대 이후 최근 한화에서 은퇴한 송창식이 활약하던 시절(2002~2003년)을 제외하면 전국대회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못 내 전국대회에서 늘 약체로 꼽혔다. 하지만 김형준(NC), 김유신(KIA), 조병규(키움) 등 1999년생 ‘슈퍼재능’들이 잠재력을 터뜨린 2017년 고교야구 주말리그(충청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충청 지역에서 ‘가고 싶은 학교’로 꼽히며 매년 전력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지역 주말리그에서는 올해까지 4년 연속 우승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감투상을 받은 3학년생 우완 조병현이 마운드의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하며 결승행을 이끌었고 키 190cm, 몸무게 95kg의 2학년생 우완 박준영은 벌써부터 시속 150km의 공을 던지며 프로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1학년 막내들은 지난해 세광중의 전국소년체육대회 우승을 이끈 주축들이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모여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환상의 조합’은 올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을 합작하는 등 만만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 감독은 “올해 4강에도 올랐고 준우승도 했다. 이제 남은 목표는 우승이다. 남은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10월 17일~11월 2일)에서는 선수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고교최강 장재영을 움찔하게 했던 ‘촌놈’들의 패기라면 세광고가 38년 동안 손에 꼽아온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는 당장이 아니라도 곧 달성될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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