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에 전대미문의 ‘이도류(二刀流)’가 떴다. 야구선수로 낮에는 훈련장에서 프로 꿈을 꾸며 구슬땀을 흘리는, 밤에는 소설가로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고려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강인규(23)는 3일 야구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북레시피·1만5000원)을 출간하며 국내 야구사에는 없던 ‘선수 겸 소설가’로 이름을 올렸다.
야구 명문 덕수고 출신으로 2016년 제7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홈런왕,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최우수선수(MVP), 홈런, 타점왕에 오르기도 했던 잘 나가던 선수가 소설을 쓴 이유는 엉뚱하다. ‘야구가 싫어서’였다. 강인규는 “고교 졸업반 당시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프로 미지명이라는 결과물을 받아들이게 돼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대학에 진학해 계속 야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야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때에 국어교사인 아버지가 ‘야구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을 써보자’고 제안해 1학년 때부터 틈틈이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야구선수가 직접 전하는 야구 이야기. 야구를 늦게 시작해 비주류로 살아왔던 주인공 강파치가 얼떨결에 야구명문 태산고에 진학한 뒤 끊임없는 노력으로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커나가는 성장드라마다. 실제 또래들보다 한참 늦은 중1 말에 정식으로 야구를 시작, 아마추어 최고 선수들이 모이는 덕수고로 진학한 뒤 3학년이던 2016년 전국대회 상을 쓸어 담던 강인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힘들지만 행복했던 과거를 복기해보는 작업은 꽤 의미가 있었다. 잊고 있던 시절, 과거의 추억들이 떠오르며 다시 야구에 대한 애정이 생긴 것. 야구가 슬슬 재미있어지자 대학교 2학년 때 나락(시즌 타율 0.218)으로 떨어졌던 성적도 오르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어렵지 않았냐”고 묻자 강인규는 야구를 하기로 결심했던 1학년 당시 반 년 동안 반대했던 부모님을 설득한 일화를 공개했다. “낮에 야구 훈련에 집중하되 집에 와서 반드시 공부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집에 돌아와 그날 학교 수업을 복습하고 동아일보 등 주요일간지를 구독하며 그날 가장 인상 깊다고 생각한 칼럼은 필사(筆寫)까지 했다. 또한 ‘야구일지’를 작성해 그날 못한 일을 기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했다고 한다. 강인규는 “힘들어서 졸려 죽겠는 때도 있었는데, 행여 공부를 안 하면 야구를 못할까봐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피나는 노력은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대학 입학 이후 학점은 1학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4.3(만점)이다. 학점이 높아 장학금도 놓치지 않았다. 글쟁이들의 글을 필사까지 했던 이력이 있어 소설 쓸 때도 즐거웠다고 한다. “후속작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이 ‘고교시절’이야기였으니 다음에는 야구를 시작한 중학교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같은 선수 겸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프로지명. 한 차례 아픔을 경험했던 강인규는 “고교시절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고 말한다. 대학무대에서도 여전히 매서운 방망이 실력(올 시즌 타율 0.413)을 자랑하고 있는 강인규는 대학시절 내내 웨이트 트레이닝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키 180cm에 몸무게 96kg의 거구임에도 날씬해 보이는 몸을 유지하고 있다. 수비에서 유랑하던 시기를 청산하고 붙박이로 든든하게 1루를 지키고 있다.
손아섭(롯데), 최원준(두산) 등 개명한 뒤 승승장구하는 선배들의 기운을 잇고 싶어 강준혁에서 강인규로 개명도 했다. 강인규는 “어질게(仁) 살고 노끈을 꼬듯(糾) 인생을 차근차근 개척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1일 열리는 신인드래프트에서 그의 현역연장 여부가 갈린다.
소설 제목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은 야구에서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타자가 헛스윙한 공을 포수가 놓친 상황으로, 기록상 삼진이지만 공보다 먼저 1루에 도달하면 살아남는다. 강인규는 전화위복(轉禍爲福),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와 이 상황이 잘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프로 미지명이라는 설움을 딛고 지난 4년 동안 단단해진 강인규가 1루를 밟고 활짝 웃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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