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벼라, 러프” 괴짜 디섐보의 혁명은 이제 첫걸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2일 03시 00분


US오픈 우승, 메이저 첫승-통산 7승
악명 높은 ‘윙드풋’ 정면돌파 선택
페어웨이 집착 않고 멀리 보낸 뒤
과감한 그린 공략 작전 들어맞아

브라이슨 디섐보가 21일 미국 뉴욕주 머매러넥의 윙드풋GC(파70)에서 끝난 제120회 US오픈에서 최종합계 6언더파 274타로 우승을 차지한 뒤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 디섐보는 자신의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자 PGA투어 통산 7승을 달성했다. 머매러넥=AP 뉴시스
브라이슨 디섐보가 21일 미국 뉴욕주 머매러넥의 윙드풋GC(파70)에서 끝난 제120회 US오픈에서 최종합계 6언더파 274타로 우승을 차지한 뒤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 디섐보는 자신의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자 PGA투어 통산 7승을 달성했다. 머매러넥=AP 뉴시스
‘필드 위의 물리학자’라는 그럴싸한 별명도 있었다. 하지만 골프의 상식을 벗어나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하는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는 ‘괴짜’,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로 불릴 때가 더 많았다. 전통과 보수를 강조하는 주위의 냉소적 시선에도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디섐보는 21일 미국 뉴욕주 머매러넥의 윙드풋GC(파70)에서 끝난 제120회 US오픈에서 최종합계 6언더파 274타를 기록해 자신의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자 PGA투어 통산 7승을 달성했다. 2위 매슈 울프(미국·이븐파 280타)와는 6타 차. 최종 4라운드에서 디섐보는 이글 1개와 버디 2개, 보기 1개를 묶어 3타를 줄였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디섐보. 머매러넥=AP 뉴시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디섐보. 머매러넥=AP 뉴시스
윙드풋GC는 비좁은 페어웨이와 15cm에 달하는 길고 질긴 러프 등으로 악명이 높은 난코스다. 하지만 대회 전 “코스가 어려워도 드라이버를 힘껏 때려 공격적인 골프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디섐보는 폭발적인 장타력을 바탕으로 출전 선수 144명 가운데 혼자 언더파 최종 스코어를 남겼다. 또 1955년 잭 플렉(미국) 이후 처음으로 최종일에 홀로 언더파를 치며 US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가장 최근인 2006년 이 코스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우승한 제프 오길비(호주)의 최종 스코어는 5오버파였다.

미국 언론은 디섐보가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이상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US아마추어오픈과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개인전, US오픈에서 모두 우승한 데 주목했다. 장차 골프 역사를 뒤흔들 전설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선두 울프에 2타 뒤진 2위로 티오프한 디섐보는 4번홀(파4) 버디로 공동 선두가 된 뒤 9번홀(파5)에서 이글을 낚았다. 드라이버로 375야드를 보낸 뒤 투 온에 성공해 12m 거리의 이글 퍼트를 적중시켰다. 8번홀에서 이날 유일한 보기를 기록했을 만큼 안정된 플레이를 펼친 끝에 정상에 올랐다.

비거리 향상을 목표로 지난해 가을부터 식이요법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해온 그는 체중을 20kg가량 늘려 ‘근육맨’이 됐다. 스윙 스피드 향상에 따른 비거리 증가로 PGA투어를 대표하는 장타자가 된 그는 ‘파워 골프’로 윙드풋GC를 정복했다.

다른 선수들이 우드로 비좁은 페어웨이를 지키려다 오히려 위기에 빠질 때 디섐보는 드라이버를 잡았다. 최대한 공을 멀리 보낸 뒤 다른 선수들이 6번 아이언을 잡을 때 9번 아이언이나 피칭웨지 등 짧은 클럽으로 그린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이번 대회에서 디섐보의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325.6야드(7위)였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41.07%(공동 26위)에 머물렀지만 그린 적중률은 63.89%(공동 5위)나 됐다.

샤프트 길이가 같은 독특한 아이언 세트를 만든 뒤 일관된 스윙을 통해 어프로치 정확도를 높이고, 팔꿈치를 거의 굽히지 않고 수직으로 세우는 듯한 자신만의 퍼팅 자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우승의 동력이 됐다. 3라운드 때 티샷이 페어웨이를 3번밖에 지키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자 경기 후 연습장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공을 칠 만큼 열정을 드러냈다. 디섐보는 “내 전략을 100% 믿고 정확한 샷을 반복적으로 정확히 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의 변신은 계속된다. 비거리를 더 늘리기 위해 샤프트 길이가 48인치(현재 허용되는 길이의 한계치)인 드라이버를 사용할 계획을 밝혔으며, 체중도 7kg 정도 늘리겠다는 게 그의 얘기. 현재 디섐보의 드라이버 샤프트 길이는 45.75인치다. 디섐보는 “모든 사람이 내 방식을 따라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다른 방법도 있다’는 영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브라이슨 디섐보#us오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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