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자유계약선수)로 오리온에 입단한 뒤 지난달 끝난 KBL(한국농구연맹) 컵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이대성(30·190cm)이 스스로가 바라고 입증해 보이려던 농구가 무엇인지 알렸다. 3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이대성은 모처럼 자신의 볼 핸들링과 기술, 패스 시야와 가드로서는 높은 신장의 우위를 통해 동료를 살리는 농구를 한 것에 만족해했다.
● ‘독고다이 농구’?… “상대 수비 균열의 시작점, 동료 살리는 조력자”
이대성은 컵대회에서 장기를 살려 자신 있게 공을 몰고 다니면서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동료 4명을 넓게 포진시켜 놓고 1대1 돌파 혹은 2대2 스크린(상대 수비자의 진로를 일시적으로 막는 움직임) 플레이 등으로 수비를 끌고 시선 유도를 하면서 동료들에게 슛 기회를 만들어줬다. 자신보다 키가 작은 수비가 붙으면 등으로 골밑까지 수비를 밀고 들어가면서 내·외곽 기회를 두루 살렸다. 이대성은 “나는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내는 시작점이다. 시작점이 균열을 만들어줬을 때 (최)진수 형, (허)일영이 형, (이)승현이 등 국가대표급 포워드들이 해결을 했으면 좋겠다.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균열을 위한 이대성의 첫 노림수 포인트는 ‘스페이싱’(공간 창출)이었다. 이대성이 수비와 맞서 공을 소유하고 있으면 포워드와 센터들이 골밑과 좌우 코너와 45도 지점으로 폭넓게 자리를 잡고 움직였다. 그 와중에 수비가 취약해진 곳이 생기면 이대성은 그곳으로 패스를 연결해 2차 ‘플레이 메이킹’을 맡겼다.
이대성은 “내가 공을 오래 갖고 있어도 수비가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그 순간에 장신이면서 순발력이 좋은 진수형, 3점 슛이 좋은 일영이 형, 그리고 중거리슛이 좋고 다른 동료를 활용하는 논스톱 연계가 능한 승현에게 패스 투입을 하면 각자의 장점에 따라 다양한 득점 상황이 나왔다”고 말했다. 결승전인 SK와의 경기에서는 상대가 지역 방어로 대비하자 센터인 디드릭 로슨에게 플레이 메이킹을 맡겨 재미를 봤다. 이대성은 “오리온에서는 공을 오래 소유하면서 진두 지휘를 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내가 공격을 전부 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다른 동료가 플레이 메이킹을 할 때 나도 공간 창출을 해서 움직이는 농구를 해야 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플레이 메이킹은 지난해 농구 월드컵에서 보고 얻은 확신이다. 이대성은 “월드컵에서 보니 강팀들은 꼭 ‘플레이 메이커’가 두 명 이상이더라. 특히 체코의 토마스 사토란스키(시카고)가 나머지 4명의 슈팅 능력과 높이를 아주 잘 활용했는데, 공격이 잘 안 풀리거나 공격 실패 후 재차 공격권을 가질 경우에는 다른 슈터가 플레이 메이킹을 했다”며 “스페이싱과 높이, 슛을 활용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 메이킹’으로의 연계, 이런 선순환의 ‘토털 농구’가 현대 농구 추세가 아닌가 싶다. 내가 지금 땀을 흘리는 이유”라고 힘줘 말했다.
● 오리온은 시간을 기다려줬다
이번 컵대회는 이대성의 농구 인생에서 의미 있게 남을 만하다. 새 시즌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강을준 감독은 이대성이 하고 싶은 농구를 자유롭게 하도록 배려했고, 경기가 더해갈수록 팀 조직력이 살아나는 성과를 얻었다.
“오리온에서는 제가 공을 오래 갖고 있으면서 예열할 시간을 기다려준 것 같아요. 제가 늦게 포인트가드 자리를 맡아봐서 ‘초짜’ 잖아요. 공을 질질 오래 끈다고 지적을 받았는데 사실 시동이 필요했던 거죠. 예열을 부담없이 하고 리듬이 잡히니까 그림을 그릴 게 많아지더라고요.”
상대의 집중 견제에 대처하는 자신감도 더 생겼다. 이대성은 “나에게 수비가 집중적으로 몰린다는 건 반대로 동료에게 기회가 더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여유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리딩을 하는 게 재밌어졌다”고 했다. ‘단짝’ 이승현과의 콤비 플레이에 대해서도 “기본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뭘하는지 알아도 못 막을 것이다. 상대가 대비하는 순간 더 쉬워진다”며 정규리그에서 맞출 호흡을 기대했다.
지난해 현대모비스에서 KCC로 트레이드되고 여러 변수로 기대만큼의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면서 얻은 압박감을 다시 간절함으로 바꾸는데 있어서 강 감독이 큰 조력자가 됐다. 이대성은 “감독님이 처음 만나 ‘갑옷’ 얘기를 하셨다. ‘자유로운 플레이 스타일과 경기 중 실수에 대해 본인이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질타를 과하게 받고 있고, 압박감과 부담을 크게 안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기존 사람들이 보는 이대성이 아닌 색안경없이 이대성을 보겠다며 몇 가지 약속을 해주셨다. 지금까지 그것을 지켜주고 계셔서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이대성 사용법’에 대한 강 감독의 접근 방식과 리더십이 좋은 영향을 끼쳤다. 이대성은 “경기에서 실수가 나와도 다른 말 없이 ‘이건 알지?’라고만 하신다. 공격에 대해서는 ‘쪽(?) 팔리게 하지는 말자’는 농담으로 격려해주신다. 컵대회 상무 전이 끝나고는 감독님이 실수에 대해 ‘너의 농구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주변 농구인들이 이대성을 지적하는 것도 경청해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라고 돌려 말해주셨다. 어린 시절 농구하면서 항상 ‘잘못됐다. 틀렸다’는 얘기만 들어왔는데 저를 ‘이분법’ 논리로 봐주시지 않은 것만으로 힘을 얻고 있고 있고 팀을 위해 책임감이 더 생긴다”고 전했다.
컵대회 우승 후 강 감독이 “이대성이 무거운 갑옷을 벗었다”고 말한 대로 이대성은 압박감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정규리그 개막 준비를 마쳤다. 이대성은 “이렇게 되려고 지금까지 참 많이 힘들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성리(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는 어록을 갖고 있는 강 감독에게 “나는 이기는데 모든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꼭 전하고 맞장구를 치고 싶다는 이대성. 확실하게 ‘오리온 맨’이 된 것 같다는 말에 그는 10일 KT와의 개막전 알찬 활약을 다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