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유독 포수에 대한 애정이 깊으셨어요. 쟁쟁한 선배들을 제쳐두고 갓 입단한 제게 말을 많이 거셨어요.”
한국 프로야구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포수로 SK 감독을 지낸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62)은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이사장은 27일 “팀 창단 때 회장님이 대학을 갓 졸업한 나를 딱 지목하더니 ‘프로란 무엇인가’라고 물으셨다. 나는 ‘프로는 일단 최고가 돼야 한다’고 답했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삼성에서 ‘국민타자’로 활약했던 이승엽(44)과도 일화가 있다. 2014년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이 회장은 야구 중계방송 도중 캐스터가 이승엽의 홈런을 알린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이승엽은 “당시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기뻤다. 빨리 회복하시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레슬링 선수로 뛰었던 이 회장은 비인기 종목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삼성은 한때 육상과 빙상, 레슬링, 탁구, 승마, 배드민턴, 태권도 등 7개 종목의 회장사를 맡았다. 태릉선수촌장을 지냈던 김인건 전 삼성전자 농구팀 감독(76)은 “올림픽 등을 앞두고는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선수촌을 자주 방문하셨다. 스포츠에 워낙 관심이 많아 선수들의 세세한 컨디션까지 물어보셨다”고 말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안한봉 전 대표팀 감독(52)은 “당시엔 TV 같은 전자기기가 귀했다. 그런데 상대를 이기려면 상대를 알아야 한다며 회장님이 스페인 현지에서 기사를 불러 훈련장에 TV와 비디오 기기를 설치해 주셨다”고 돌아봤다. 한국 여자 탁구의 전설 이에리사 전 의원(66)도 “선수 시절 집으로 초대해 북한 선수들 경기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 주셨던 기억이 있다. 상대 전력을 분석하도록 챙겨 주셨다”고 말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왕하오(중국)를 꺾고 금메달을 땄던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38)도 “중국을 꺾은 탁구 금메달이 정말 대단한 금메달이라고 칭찬해 주셨다”고 말했다.
박세리 골프 대표팀 감독(43)의 꿈도 이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교 시절부터 삼성의 후원을 받은 박 감독은 “1996년 국내에서 LPGA투어 대회인 삼성 월드챔피언십이 열렸다. 세계적인 선수 20명만 참가한 특급 대회에 출전하면서 더 큰 무대를 향한 꿈을 꾸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진출 전 회장님과 안양CC에서 라운딩을 했는데 가능성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보라고 말씀하셨다”며 “삼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그리고 세계 최고가 된 한국 여자 골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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