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린(24·문영그룹)은 오랜 침묵을 깨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8일 인천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파72)에서 끝난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에서 2주 연속이자 대회 2연패를 노리던 강호 장하나(28)를 3타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17년 투어 데뷔 후 4년 가까이 92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던 그는 지난달 12일 오택캐리어 챔피언십에서 93번째 도전 끝에 첫 우승을 달성한 뒤 불과 4주 사이에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7년 투어 데뷔 후 지난해까지 안나린이 3년 동안 벌어들인 상금은 약 4억6700만 원. 하지만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 우승 상금 3억 원을 포함해 올해에만 약 5억9500만 원을 벌어 상금 랭킹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2승 이상을 올린 선수는 박현경(20), 김효주(25)에 이어 안나린까지 3명뿐이다.
어떤 변화가 이런 극적인 반전을 일으켰을까. 안나린은 우선 긍정적인 마인드를 꼽았다. 그는 골프 시작 자체가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늦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골프를 권유하셨는데 안한다고 했어요. 뛰어노는 걸 좋아하다 보니 태권도, 축구처럼 동적인 운동을 즐겼어요. 골프는 가만히 서서 하는 것 같아 재미가 없어 보였죠.”
인연이 없는 줄 알았던 골프였지만 그가 먼저 다가가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골프 선수들 플레이하는 걸 보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신지애, 최나연 프로가 활약하던 모습을 자주 봤어요.”
대한항공 엔지니어로 일하던 아버지가 제주로 전근을 가면서 한라중에 다니던 2009년 가을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뒤늦게 골프에 입문하면서 국가대표나 상비군 경력도 변변히 쌓을 수 없었고 주니어 대회 때도 우승 한번 한 적이 없었다. 2부 투어 시절 유일하게 우승 경험을 했을 뿐이다. 투어에 뛰어들어서도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안나린은 “물론 나 역시 우승을 간절히 원했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그날이 따라오리라는 생각뿐이었다. 투어 프로라는 생활 자체가 직업으로서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름 얘기를 꺼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나린’이란 이름은 순한글 고어에서 유래했어요. 내려준다는 의미라고 해요. 올해 하늘에서 큰 선물을 내리신 것 같아요.(웃음)”
겸손하게 얘기했지만 노력 없이 성적이 거저 따라오는 건 아니다. 안나린은 높아진 그린적중률을 상승세 비결로 설명했다. 투어 데뷔 후 지난 3년 간 그의 그린적중률은 65% 전후에 머물렀다. 이번 시즌에는 10일 현재 74.7%에 이른다. “예전에는 아이언 샷이 짧거나 길어지는 등 그린 공략할 때 앞뒤 미스가 많았어요. 요즘 샷과 관련해서 터치감이나 페이스에 맞는 느낌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 같아요. 거리 컨트롤이 잘 되면서 자신감도 커졌습니다.”
그린적중률이 높아지면서 평소 장점인 퍼팅은 더욱 위력적인 무기가 돼 타수를 줄이는 데 효과를 보고 있다. 10대 시절 골프 유망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성윤 코치와 2년가량 호흡을 맞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안나린은 첫 승을 거둘 때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10타차 선두로 출발하고도 지나치게 긴장한 실수를 쏟아내 2타차까지 쫓긴 끝에 간신히 승리를 지킬 수 있었다. 2승 달성 때는 달랐다. 현역 선수 가운데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가을 여왕’ 장하나와 신흥 강자라는 평가를 받는 박민지와 공동 선두로 출발해 부담을 느낄 법했다. 하지만 16번홀까지 보기 없이 무결점 플레이로 좀처럼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안나린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위즈골프 윤소원 대표는 “장점이 많은 선수다. 일단 성실하고 늘 열심히 한다. 퍼팅에 강점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윤 대표 또 “다른 선수들보다 차분하고 자기표현도 꽤 잘한다. 가족이 화목한 것도 큰 장점이다”고 덧붙였다.
안나린은 13일 강원 춘천시 라비에벨CC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시즌 마지막 대회 SK텔레콤 ADT캡스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상금왕도 노릴 만한 위치다.
“좋은 일이 많았던 한 해였던 만큼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시즌이 끝나면 올해보다 좀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안나린의 시선은 벌써부터 내년을 향하고 있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