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배구연맹(FIVB)이 매년 공식 발간하는 사례집은 ‘랠리가 끝난 뒤 선수가 네트를 잡아당긴 행위’를 ‘파울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걸로 확인됐다.”
20일 한 일간지 기사에 이런 문장이 등장했다. FIVB 규칙 ‘판례 모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집’에 따르면 흥국생명 김연경(32)이 11일 서울 장충체육관 방문 경기 5세트 때 네트를 잡아당긴 행위는 반칙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기사는 “사례집의 6.5항에선 김연경 건과 완벽히 들어맞는 사례를 영상과 함께 설명한다”고 소개했다.
정말 그럴까? FIVB 사례집 원문은 이렇다.
“Because the net touch shown on the video occurred after the rally, cannot be considered as a technical fault.”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이 비디오에 등장하는 네트 터치는 랠리가 끝난 다음에 발생했기 때문에 기술적인 반칙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FIVB 규칙 11.3.1 위반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FIVB 규칙 11.3.1은 배구 팬이라면 잘 알고 계시는 네트 터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FIVB 규칙을 번역한 한국어 문장은 대한민국배구협회 규칙을 인용한 것.)
“Contact with the net by a player between the antennae, during the action of playing the ball, is a fault. (볼 플레잉 동작을 하는 동안 선수가 두 안테나 사이의 네트에 접촉하는 것은 반칙이다.)”
‘사례집’은 이어서 이 행위가 FIVB 규칙 21에 해당하는 불법행위(misconduct)인지 다룬다. 이번에도 원문을 보면 이렇다. (한국어 문장은 ‘발리볼 비키니’ 해석)
“Pulling down the net may be a normal emotional reaction of a disappointed player and can be controlled by the art of refereeing. In some cases, intentional pulling down of the net may be considered as a rude conduct, e.g during the rally misleading the referee and/or the opponent.
(네트를 잡아 당기는 행위는 실망한 선수가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반응일 수도 있다. 사례에 따라서는 고의적으로 네트를 잡아 당기는 행위를 ‘무례한 행위’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심판 또는/그리고 상대 팀을 현혹하려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무례한 행위(rude conduct)’는 일상 용어가 아니라 규칙 용어다. FIVB 규칙 21.2.1은 ‘예의나 도덕성에 어긋나는 행동(action contrary to good manners or moral principles)’을 무례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무례한 행위는 공격적 행위, 폭력적 행위와 함께 ‘제재 대상 불법 행위(Misconduct Leading To Sanctions)’에 속한다. 이 세 가지 행위 가운데 가장 심각성(seriousness of the offence)이 낮은 행위가 무례한 행위다.
‘사례집은’ 아래 문장으로 이어진다. (한국어 문장은 ‘발리볼 비키니’ 해석)
“However based on the current approach, if the second referee observes unsportsmanlike gestures or words between the opponents, or similar behaviour, he/she can order the players to change his/her behaviour asking the player(s) to calm down.
(위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기본이지만 만약 부심이 양 팀 선수 사이에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위나 발언을 목격했다면 부심은 선수(들)에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행동을 자제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
여기서 ‘부심’이 등장하는 건 FIVB 규칙 21.3이 주심(first referee)에게 제재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According to the judgment of the first referee and depending on the seriousness of the offence, the sanctions to be applied and recorded on the scoresheet are: Penalty, Expulsion or Disqualification.
(주심의 판단 및 위반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제재가 적용되며 경기 기록지에 기록된다: 벌칙, 퇴장 또는 자격박탈.)”
‘사례집’ 역시 불법행위를 다루는 시작 부분에 주심에게 제재 권한이 있다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기에 이 부분을 덧붙인 것이다.
the 1st referee has the authority to sanction a player according to the seriousness of the offence.
(위반의 심각성에 따라 징계할 권한은 주심에게 있다.)
그런데 이 일간지 기사는 이 부분을 이렇게 잘못 번역했다.
“다만 ‘최근 접근법에 따르면 만약 부심이 선수가 상대편에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제스처나 발언 혹은 이와 유사한 행위를 한 장면을 본 경우, 부심이 선수에게 자제를 요청함으로써 해당 행위를 바꾸게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즉, 랠리 중에 이뤄진 무례할 정도의 행위에 대해서도 부심에 의한 ‘자제 요청’ 정도로 해결하는 게 FIVB의 공식 해석인 것이다.”
관점에 따라 김연경이 네트를 잡아당긴 행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례집’에 이런 행위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나와 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이번 ‘발리볼 비키니’는 인용구로 가득했으니 이 일간지 기사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있어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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