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과 박지성, 손흥민 중에 누가 최고의 축구 선수인가를 놓고 벌이는 이른바 ‘손차박 논쟁’ 이전에 전 세계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황제’와 ‘전설’로 불리는 두 선수를 놓고 누가 더 위대한지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브라질 정부가 공식적으로 ‘국보’로 지정한 펠레와 자국의 열혈 축구팬들 사이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디에고 마라도나에 관한 얘기다.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60세에 사망하면서 이 논쟁에는 다시 불이 붙고 있다.
◇ ‘20세기 선수’ 공동 수상 =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빼어난 발기술, 발군의 득점력으로 조국 아르헨티나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고, 프로 무대에선 하위권이었던 나폴리를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정상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펠레는 16세에 처음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된 뒤 브라질의 3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에서 3차례 우승 경험은 펠레가 유일하다. 또 소속팀 산토스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를 놓고 축구계가 양분돼 있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라도나가 2000년에 국제축구연맹(피파·FIFA)의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20세기의 선수’로 선정됐을 때 축구계에선 상당한 충격이 있었다.
피파는 서둘러 축구 기자와 관계자들로 구성된 ‘축구 가족(Football Family)’ 위원회를 임명했고, 위원회는 펠레를 추가로 선정해 ‘세기의 선수’는 두 사람이 공동 수상했다.
◇ 피파의 평가 = 당시에 피파 측은 펠레에 대해선 “페날티 박스가 자신의 영역인 스트라이커로, 재미로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였고 이후 체육부 장관에 올랐고, 성격은 조용한 편”이라고 전했다.
마라도나에 대해선 “아마도 가장 완벽한 선수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이자 골잡이”였다면서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예측불가능하고 충동적이었다. 수년 간 여러 문제들에 시달린 선수”라고 평가했다.
◇ “정치적 사고” vs “나쁜 선례” = 세계 축구팬들 사이에선 이 논쟁에 여러 수식어를 붙이는데 ‘아르헨티나 vs 브라질’이 가장 일반적이고, ‘일반인들이 뽑은 인물’(man of the people) vs 기득권 인물(establishment figure)‘ ’파티광 vs 조용한 사람‘ ’반역자 vs 순응주의자‘ 등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펠레는 마라도나에 대해 투박하고, 품위가 없다고 봤고, 마라도나는 펠레를 변절자로 여겼다.
마라도나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선수로서 그는 위대했지만 그는 정치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펠레는 마약·알코올 중독 등으로 구설에 올랐던 마라도나에 대해 “나쁜 선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처음부터 껄끄러운 사이는 아니었다. 1979년 처음 만났을 때엔 상당히 사이가 좋았다. 당시, 마라도나는 펠레를 보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까지 날아갔다.
펠레는 당시 유망주였던 마라도나에게 조언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고, 마라도나는 최고 스타였던 펠레를 만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둘 간의 관계는 1982년에 틀어졌다. 스페인 월드컵에서 브라질 선수를 밟아 퇴장당한 마라도나를 펠레가 비난한 것이 발단이었다.
◇ 펠레, 마라도나 애도 = 그때부터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상대를 비방해왔다. 하지만 마라도나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에 펠레는 예를 갖춰 고인을 애도했다.
펠레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슬픈 소식이다. 나는 위대한 친구를, 세계는 위대한 전설을 잃었다”며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마라도나의 가족에게 힘을 주길 바란다.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축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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