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야구로 향하는 한국야구의 전설[김배중 기자의 핫코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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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뭐…(웃음).”

얼마 전 한화 유니폼을 벗은 송진우 전 코치(54)에게 안부를 묻자 멋쩍은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를 떠나 여유를 즐기는 그의 옆에 세 살 된 딸이 있었고 평일(1일) 낮 시간에 늦둥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현역시절 KBO리그 통산 최다인 210승을 거둔 송골매의 ‘여유’는 오래가지 않을 듯 하다.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의 지휘봉을 잡는 송진우 전 한화 코치. 동아일보 DB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의 지휘봉을 잡는 송진우 전 한화 코치. 동아일보 DB

독립야구의 한 관계자는 “최근 송 전 코치가 최근 창단한 독립야구팀 지휘봉을 잡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플리케이션 개발업체인 ‘본 아이티’가 창단한 ‘스코어본 하이에나들’로 2021시즌 경기도 독립야구리그에 참가할 예정이다. 독립야구팀 대부분이 선수들로부터 회비 등을 받고 운영하는 것과 달리 송 전 코치가 지휘봉을 잡는 팀은 소속 선수들이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야구의 전설인 그가 독립야구로 향하는 이유에 대해 처음에 형식적인 대답들이 돌아왔다. 송 전 코치는 “독립야구팀 창단을 주도한 본 아이티 관계자가 (송 전 코치의 고향 충북 증평과 가까운)청주 출신이고 최근 은퇴한 송창식(전 한화)과 초등학교 동창이다. 팀을 만드는데 꼭 와주면 좋겠다고 거듭 요청해서 (지휘봉을 잡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역시절 ‘송골매’로 불릴 정도로 집요하게 상대 타자를 공략했던 ‘승부사’가 단순히 ‘지연(地緣)’으로만 이런 결정을 내렸을 리는 없다. 속 이야기를 기다리듯 잠시 뜸을 들였더니 송 전 코치도 속내를 말했다.

“프로에서만 한 우물을 파왔는데 나도 내가 모르고 지나쳐왔던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프로 문턱에서 미지명이나 부상 등으로 방출되는 등 좌절을 맛본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하다 보면 선수들에게는 프로 진출이라는 좋은 소식이 들릴 거고, 나도 또 배우는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이게 ‘윈-윈’ 아닐까요?”

2009년 현역 은퇴 이후 2010년 일본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를 받은 뒤 2011년 친정팀 한화 2군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송 전 코치는 ‘1기’(2011~2014년) 때만 해도 현역시절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혹평이 뒤따랐다. 김혁민(은퇴) 등 유망주들이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하고 한화의 암흑기를 되살리지 못한 송 전 코치도 2014시즌 이후 쓸쓸하게 친정 팀을 떠났다.

마운드에서 평정을 잃은 투수를 치료(?)하러 마운드로 향하는 투수코치계의 ‘화타(華陀)’. 동아일보 DB
마운드에서 평정을 잃은 투수를 치료(?)하러 마운드로 향하는 투수코치계의 ‘화타(華陀)’. 동아일보 DB

하지만 2018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화로 돌아온 송 전 코치는 과거와 다른 모습이었다. 공백기 동안 해설위원 등을 하며 야구를 ‘밖에서’ 본 게 도움이 됐단다. 1기 시절 선수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무섭기만 했던 송 전 코치는 선수들과 소통할 줄 아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또한 송 전 코치의 집중조련을 받고 송 전 코치의 전매 특허던 ‘체인지업’을 전수받은 선수들이 두각을 드러내며 전설의 명의인 ‘화타(華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투고타저가 극심했던 2018시즌 한화의 불펜은 10개 구단 중 1위(평균자책점 4.29)였다. 이 난공불락을 앞세워 2007년 이후 가을무대 경험이 없던 한화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PS)에 진출했다. ‘지나쳤던’ 부분을 꼼꼼히 짚고, 잘 채워 돌아온 송 전 코치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번에 송 전 코치가 프로 타이틀을 내던지고 향하는 곳은 1군 주변이 아니라 ‘저변’이다. 한 차례 프로의 외면을 받은 선수들을 지도하는 만큼 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프로의 관심을 받는 선수가 되게끔 하기위해 더 세심한 지도와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4일 경기도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주관하는 ‘2021 독립야구단 경기도리그 공동 트라이아웃’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하는 ‘송진우 감독’은 “아직 팀원이 어떻게 구성될지 모르니 선수 개개인에 대한 파악은 선수선발 이후에 할 일이다. 다만 독립야구단이 매년 치르는 리그 경기(1시즌 60경기) 수는 다소 적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 등 아마추어 팀들과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돌파구를 찾아 가겠다”며 자신이 지휘봉을 잡을 팀에 대한 청사진을 밝혔다.

해설위원 등 야인생활을 거치며 한층 발전한 모습으로 친정팀의 11년 만의 PS 진출에 기여했던 송 감독이 사연 많은 선수들과 ‘기적’을 연출하고 다시 프로무대로 웃으며 돌아오길 기원해본다.

현역시절 ‘송골매’로 명성을 떨쳤던 KBO리그 통산 최다승(210승) 투수 송진우. 통아일보 DB
현역시절 ‘송골매’로 명성을 떨쳤던 KBO리그 통산 최다승(210승) 투수 송진우. 통아일보 DB


김배중 기자wanted@donga.com
#독립야구#송진우#김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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