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K리그 컴백을 결정했던 ‘블루 드래곤’ 이청용(35)이 지난 3월5일 울산 현대 공식 입단식에서 전한 말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정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종목도 아닌 팀 스포츠에서 우승이란 개인만 잘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운도 필요하다. 소속팀이 아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도, 그 시기에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팀이 있다면 2인자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현재 K리그의 울산이 그런 느낌이다.
2~3년부터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K리그 우승을 목표로 삼은 울산은 거의 손에 잡을 듯 진보했으나 아직은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내내 선두를 달리던 울산은, 거짓말처럼 최종 38라운드에서 패하면서 전북 현대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래서 2020년은 절치부심이었다. 시쳇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다)’해서 스쿼드의 질과 양을 보강했고 그 마지막 방점 같은 인물이 이청용이었다. 그런데 울산은 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규리그와 FA컵 모두 전북에 밀려 준우승에 만족해야했다. 주위의 큰 기대 속 묵직한 책임감으로 함께 했던 이청용으로서도 아쉬움이 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울산이 마지막에 아주 귀한 줄 하나를 잡았다. 놓친 대회들보다 더 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에 진출, 아시아를 품을 절호의 찬스가 생겼다. 울산도 이청용도 2020년의 한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기회다.
카타르 도하에서 진행 중인 ACL 2020에 참가하고 있는 울산은 지난 13일 빗셀 고베(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연장 혈투 끝에 2-1로 승리, 결승에 올랐다. 2012년 대회 우승 이후 8년 만에 정상탈환 기회를 잡은 울산은 서아시아 지역 챔프 페르세폴리스(이란)와 오는 19일 우승 트로피를 놓고 맞대결을 펼친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지난 2월 홈에서 FC도쿄와 1-1로 비기며 불안하게 대회를 출발한 울산은 11월부터 도하에서 재개된 이후에는 파죽지세다. 조별리그 5전 전승에 이어 16강-8강-4강까지 모두 승리, 8연승 중이다. 특히 매 경기 2골 이상 터뜨리고 있는데, ACL 역사상 단일 시즌에서 7경기 이상 연속 다득점(2골 이상)으로 승리를 거둔 팀은 울산뿐이다. 워낙 기세가 좋기에 안팎의 기대가 적잖다.
김도훈 감독부터 대부분의 선수까지, 울산 스쿼드에는 2인자 꼬리표가 지긋지긋한 이들이 차고 넘친다. 이청용 역시 정상에 목마른 선수다.
2004년 FC서울에 입단해 2006년 데뷔전을 치른 이청용은 K리그에서와 유럽생활(볼튼, 크리스탈 팰리스, 보훔)을 통틀어 딱 1번 우승을 경험했다. 프로 초년생이던 2006년 FC서울에서의 리그컵이 유일한 트로피다. 하지만 2006년은 FC서울 내 이청용의 존재감이 그리 대단치 않았을 때다. 정규리그 2경기, 리그컵 2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그의 본격적인 커리어는 사실상 2007년부터다.
요컨대 ‘구성원’ 형태에서 맛만 본 것이 프로에서 우승의 전부이니 이청용 역시 트로피와는 인연이 없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 때문에 이번 ACL 결승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정규리그와 FA컵 결승 등 전북과의 아주 중요한 경기에서 플레이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이청용이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찬스이기도 하다.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K리그, 어느덧 서른 줄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청용은 시즌 내내 ‘남다른 클래스’를 보여줬고 덕분에 힘과 높이, 빠르기 등 ‘강함’만으로 가득했던 울산에 부드러움과 여유를 가미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기록에 남는 결과물’은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시즌 내내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도 마치 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날리기 위해 이제 ‘용의 눈’을 그려야한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이별을 암시한 김도훈 감독만큼이나 우승이 목마른 이청용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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