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프로야구 구단들이 2020시즌 경기를 대부분 무관중으로 치르며 대규모 운영 적자를 맛봤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 개장을 앞두고 FA자격을 취득한 선수들에게는 “운이 없다”는 평가가 따랐다. FA 참전을 선언한 구단들이 “오버페이는 없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승부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지고 싶지 않은 게 운동하는 이들의 심리인가 보다. FA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며 코로나19가 무색할 정도로 FA의 몸값도 올랐다. 그리고 하나 둘씩 구단들이 없을 거라 장담하던 ‘오버페이’의 수혜자가 되고 있다.
허경민(7년 85억 원), 정수빈(6년 56억 원·이상 두산), 오재일(4년 50억 원·삼성)과 함께 FA 시장의 ‘빅4’로 꼽힌 최주환(4년 42억 원·SK)의 계약(11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착한 계약’으로 주목받고 있다. 뛰어난 실력에도 원 소속팀 삼성에 남고 싶어 염가계약을 했던 박한이 삼성 코치의 별명인 ‘착한이’, 가격에 비해 반찬 구성이 많아 극찬을 받는 ‘혜자’ 도시락 등 긍정적인 수식어들이 최주환 이름 앞에 붙는다.
프로 데뷔 이후 15년 만에 국가대표가 넘쳐 바늘구멍 같던 두산 내야(2루)의 주전까지 꿰찬 선수, 자기 자리를 찾기까지 3루 글러브, 1루 미트를 끼며 생존을 위해 버틴 근성 있는 선수,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안방으로 쓰며 시즌 26홈런(2018시즌)을 기록했던 거포. 장점이 많은 최주환도 경기장에서만큼의 독한 마음을 먹었다면 다른 셋 못지않은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SK와 원 소속팀 두산을 비롯해 최대 6개 팀이 영입의사를 밝히는 등 판은 깔려 있었다.
지방의 A구단은 SK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그에게 강한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A구단이 제시한 금액과 SK와 사인한 금액 차는 최주환이 FA자격 획득 전 받은 자신의 최고연봉(3억8500만 원·2019년)보다 크다. 최소 1년 치 이상의 연봉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최주환은 SK를 택했다.
5일 새신랑이 된 후 신혼생활 중인 최주환은 “결혼 하고 곧바로 FA계약도 하는 겹경사를 맞아 기쁘다”고 했다. SK를 택한 이유에 대해 “사인하기도 전에 이름과 등번호(53)를 새긴 유니폼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보기 드물지 않나. 돈을 떠나 이 팀이 나를 간절히 원하고 예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주전 2루수’도 보장받아 두산 시절처럼 1루 미트 등 다른 포지션 글러브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덜(?) 받은 돈’에 대해 “앞으로 4년만 선수 생활을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2019시즌을 앞두고 새 시즌에 32살이 되는 최정이 SK와 6년 106억 원의 장기 FA계약을 맺는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는 최주환은 “4년을 알차게 보내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SK에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수년 동안 비 시즌 중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땀 흘렸던 피트니스센터가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문을 닫아 최주환은 근간부터 새 판을 짜야 한다. 그렇지만 특유의 생글생글한 미소는 잃지 않는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드릴게요.”
2018시즌 커리어하이 시즌(타율 0.333, 26홈런, 173안타, 108타점)을 보낸 뒤 이듬해 부상으로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최주환은 2020시즌을 앞두고 체중감량을 위해 겨울내내 송파구 올림픽 공원 일대(4~5km)를 매일 뛰며 같은 말을 했다. 8kg를 감량하고 새 시즌을 맞은 최주환은 2020시즌 타율 0.306, 16홈런, 156안타, 88타점으로 부활했다. 날렵해진 몸으로 수비에서도 ‘두산의 주전 2루수’로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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