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는 시즌 이후 거세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은 여전히 광풍이 불었지만 소수의 선택받은 선수들만 누릴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비주전급으로 분류되는 선수들은 각 구단들이 시즌 이후 단행한 강도 높은 선수단 정리의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한화 내야수 김회성(35)도 그중 하나다. 2009년 1차 지명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그는 190cm의 장신에 장타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꾸준한 기회를 받았지만 결국 이번 겨울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은 뒤 은퇴를 결심했다. 방출 통보를 받은 당시 김회성은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현역 생활 도중에도 했다”고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희소식이 전해졌다. 한화가 전력분석원으로 그를 채용한 것. 김회성은 “잘 하는 선수가 아니었기에 선수 시절에도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은퇴 후에는 전력분석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즌 후에 결혼하는 동료들의 결혼식장을 오가며 만난 구단 관계자들과 계속 교감해왔는데, 좋은 제안을 해줬다”고 말했다. 방출된 당시보다 목소리에 훈기가 배어있었다.
야구팬들에게 김회성은 철저한 무명선수지만 한화 팬들에게 김회성은 아픈 손가락이다. 1차 지명 선수로 선수생활 초반에 기대가 많았지만 잦은 부상으로 끝내 잠재력을 폭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에게 함부로 손가락질 하기 힘든 이유는 부상이 몸 관리 실패에 기인한 게 아니라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뼈가 부러지는 등의 ‘운 나쁜’ 부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화 출신의 한 선수도 “성실하기로는 팀에서도 ‘전설’이라 불릴 만 한데 운이 안 따랐던 것 같다. 김회성이 부상을 당하면 동료들이 더 슬퍼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김성근 감독의 부임 이후 겨울 내내 ‘지옥의 펑고 훈련’을 군말 없이 소화하며 성실함을 인정받고 2015시즌 제대로 기회를 얻었다. 김회성도 그 시즌 ‘16홈런’을 기록하는 등 잠재력이 폭발하는 듯 했다. 하지만 또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그해 9월 어깨통증이 찾아오며 시즌을 제대로 못 마친 것. 김회성은 “현역 생활을 하면서 안 다친 데가 없었다. 부상이라면 고개를 젓고 싶다”고 회상했다.
전력분석원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한솥밥을 먹던 팀 동생들이 ‘나 같은 실패’를 안 했으면 해서…”란다. 현대 프로야구에서 분석은 이제 ‘감’이 아니라 ‘숫자’고 ‘데이터’이기에 공부할 게 태산이지만 그 숫자들과 열심히 씨름 하며 선수들에게 부상 없이 즐겁게 야구할 수 있는 길도 제안해주고 싶다고 했다.
10시즌 통산 타율 0.212, 홈런 35개를 친 유명하지도, S급 선수도 아니었던 김회성을 인터뷰한 이유는 김회성이 야구사에서 보기 드문 한 장면을 남기고 간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2019년 5월 4일 열린 한화와 KT와의 경기에서 한화는 7-9로 뒤진 9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김회성의 ‘싹쓸이’ ‘끝내기’ ‘2루타’에 힘입어 10-9 역전승을 거뒀다.
단순히 야구계에서 너무 유명한 미국 야구의 전설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을 보여주는 장면일 줄만 알았는데, 관중석에서는 난리가 났다. 한화 유니폼을 입은 한 어린이 팬이 이 승리가 감격스러운 나머지 아버지를 부여잡고 오열했고, 이 장면이 생중계를 타며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은 것. 이날 밤 한화는 펑펑 운 어린이 팬을 찾아 나섰고 몇 시간 뒤 연락이 닿아 어린이날에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과 어린이 팬의 극적인 만남까지 성사됐다. 김회성은 “내가 팬을 울린, 선수생활을 통틀어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더 많은 팬들을 울렸어야 했는데…”라며 수줍게 웃었다.
2021년 1월, 김회성은 데이터 야구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외국인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체제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스타였던 적이 없기에 항상 자신감도 없어보였던 그가 좀 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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