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거 ‘맏형’ 추신수가 ‘막내’ 김하성에게 주는 조언[이헌재의 B급 야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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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내야수 김하성(26)의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행이 확정됐습니다. 1일 샌디에이고 구단과, 김하성 본인, 소속사 모두가 입단 사실을 알렸습니다.

조건도 상당히 후한 편입니다. 4+1년 최대 3900만 달러의 조건입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토론토)이 2012년 말 LA 다저스로 갈 때 계약이 6년 3600만 달러였으니 류현진 못지않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샌디에이고는 야구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기후가 온화하고, 한국 사람도 적당히 있고, 대도시인 로스앤젤레스와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특히 샌디에이고는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다르빗슈 유(전 시카고 컵스)와 블레이크 스넬(전 탬파베이) 등 에이스급 투수들을 영입하며 월드시리즈를 노려볼 만한 전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남은 건 김하성이 야구를 잘하는 것뿐입니다. 계약 조건에서 볼 수 있듯 김하성의 실력은 메이저리그에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대체 외국인 선수로 키움에서 뛰었던 애디슨 러셀(27)과의 내부 경쟁은 메이저리그 팀들에게는 일종의 테스트였을 것 같습니다. 2015¤2019시즌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서 뛴 러셀은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타율 0.242, 60홈런, 253타점을 기록한 올스타 출신입니다. 2016년에는 팀의 주전 유격수로 컵스의 108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지요.

7월 말 러셀이 키움에 합류하면서 붙박이 유격수였던 김하성은 3루수로 잠시 자리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즌이 계속될수록 김하성의 우위가 확연해졌습니다. 러셀의 시즌 성적은 0.254, 2홈런, 31타점이었습니다. 반면 김하성은 0.306, 30홈런, 109타점입니다. 김하성은 결국 최다 득표의 영예와 함께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했습니다.

피츠버그에서 불꽃같은 활약을 펼쳤던 팀 선배 강정호(은퇴)의 선례를 고려하면 김하성도 메이저리그 충분히 성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성공을 보다 확실히 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더 필요할까요.

7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6시즌 동안 빅리그에서 뛰었던 코리안 메이저리그 맏형 추신수(39·전 텍사스)는 ‘백지론’을 조언합니다.

이전에도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올 때마다 같은 얘기를 했다는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올 정도면 이미 최고의 선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에 올 때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하얀 백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세상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도 사람 사는 곳이다. 야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영어를 못해도 웃으면서 다가가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세상사는 게 다 똑같다. 선수, 코치들도 다 그런 노력들을 알아보고 도와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를 백지로 만들어 메이저리그에 연착륙한 선수가 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투수 김광현입니다. KBO리그 최고 투수로 지난해 메이저리그 루키가 된 김광현은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정말 신인같은 자세로 팀원들을 대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에이스 애덤 웨인라이트가 훈련할 것을 찾지못해 곤란을 겪던 그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훈련하기도 했지요.

그 동안 KBO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한국 선수들에 비해 훨씬 젊은 나이에 메이저리거가 된 김하성은 자기 하기 나름에 따라 메이저리그에 또 하나의 역사를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샌디에이고와의 최대 5년 계약이 끝나도 그는 야구 선수로는 초절정의 나이라 할 수 있는 30살 내외밖에 되지 않습니다. 꾸준히 실력을 보여준다면 추신수의 7년 1억 3000만 달러 못지않은 큰 계약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새하얗게 펼쳐진 종이 위에 욕심 부리지 말고 찬찬히 많은 그림을 그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헌재 기자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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