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김기동 감독 “스트레스 없이 뛰게 해 주는 게 ‘김기동 축구’ 핵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3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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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맨’이라는 (홍)명보 형이 울산을 맡아서 무척 신경이 쓰이네요.”

포항 김기동 감독(50)은 지난해 3위 팀 사령탑으로는 K리그 사상 처음으로 ‘올해의 감독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포항만의 공격 축구를 잘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도 부임한 2019년에 4위, 지난해 3위를 했던 그는 최근 홍명보 전 대한축구협회 전무(52)가 울산 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그는 “나는 고졸, 명보 형은 대졸로 1991년 포항에 입단한 동기다. 나도 포항만의 축구 색깔을 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포항의 대표 스타 출신인 홍 감독이 어떠한 색깔을 선보일지 궁금하면서 긴장된다”고 말했다.

최근 포항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을 다음 시즌에도 잘 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넉넉하지 못한 구단의 재정에도 지난 시즌 송민규(22·득점 8위)라는 젊은 공격수를 K리그 히트 상품으로 키워내고, 외국인 공격 트리오 일류첸코-팔로세비치-팔라시오스를 잘 활용하며 팀 득점 1위(56골)를 기록했다. 공격 전개로의 속도감을 높이는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간결한 플레이도 인상적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면서 잘못된 습관과 트라우마를 지워가는 것이 ‘김기동 축구’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지도 방식에 따라 선수의 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김 감독은 “모든 플레이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던 팔로세비치에게 ‘네가 혼자 많이 뛸수록 일류첸코가 외로워지더라. 일류첸코는 너의 ‘킬 패스’만 기다릴 것’이라며 격려하며 플레이 변화를 주문했더니 스스로 재미를 느끼면서 플레이를 180도 바꿨다”고 말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실점으로 이어지는 실수에 부담을 많이 가졌던 이승모도 면담을 통해 고민을 듣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려 잠재력을 끌어냈다.

포항의 새 시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외국인 공격 트리오 모두 팀을 떠날 가능성이 큰 데다 주장 최영준 등 국내 선수들도 임대 복귀와 병역 의무 등으로 여럿 전력에서 빠졌다. 지난 시즌 7골 5도움을 기록한 강상우의 잔류와 전북에서 임대 복귀한 미드필더 이수빈의 합류가 그나마 다행이지만 공격진이 걱정이다. 그래도 김 감독은 “새 외국인 선수들을 포함해 ‘김기동 공격 축구’에 최적화 할 수 있는 선수를 발굴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2021시즌에도 볼 컨트롤이 좋고 활동 반경이 넓은 선수들을 최전방 공격 라인에 중용 할 계획이다. 그는 “전방으로 패스가 갈 때 공을 제대로 소유하지 못하는 공격수는 상대 수비에 밀려 튕겨져 나온다. 상대 진영까지 빠르게 들어가려면 최전방에서 기술 축구를 해야 한다. 이런 틀에서 공격의 돌파구를 계속 찾을 것”이라며 “송민규는 저돌적으로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욕구를 계속 살려주되 손흥민(토트넘)처럼 공수를 빠르게 전환할 수 있도록 파워를 키워주고 싶다. 그게 올 시즌 내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의 축구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팀 전력의 플러스 요인으로 꼽았다. 선수들을 지도하며 ‘빌드업을 잘 해라’, ‘점유율을 높여라’는 등의 얘기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전술의 큰 테두리를 정하고 그 안에서 상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만 주다보니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팀 축구에 집중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4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의 축구 금메달을 이끈 故 이광종 감독을 코치로 보좌하면서 선수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교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새 시즌 각오를 묻는 질문에 김 감독은 “이제는 선수들이 내가 훈련이나 경기 전에 어떤 전술을 내놓을지 자기들끼리 논의를 할 정도다. 선수들이 강요를 받지 않고 스트레스 없이 팀 분위기가 즐겁게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인상 쓰면 포항 축구는 지는 거다’라는 말을 자주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포항=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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