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의 2년차 권민지(20)는 매일 밤 다이어리를 쓴다. 고1 때부터 쓰기 시작해 고3 이후로는 줄곧 거르지 않고 써왔다고 한다. 10년 뒤 돌아보면 뿌듯할 거란 생각에 시작한 습관이다. 배구에 대한 고민부터 일상생활이나 자신의 체중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고 한다.
지난시즌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 후로는 새로운 이야기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새로운 포지션에 대한 고민이다. 대구여고 시절 레프트 유망주였던 권민지는 프로 무대에서 센터, 라이트 등 다양한 포지션에 도전하고 있다. 리그를 대표하는 토종 레프트 이소영(27), 강소휘(24) 등이 버티는 팀의 레프트 자리는 이미 포화상태기 때문. 최근 경기 가평군 팀 체육관에서 만난 권민지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다보니 해야 할 일도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권민지는 팀이 소화한 18경기 중 16경기에 출전하며 없어선 안 될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주전 센터인 한수지(32)가 최근 발목 수술로 사실상 시즌 아웃되면서 더욱 어깨가 무거워졌다. 개인 기록에선 아직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파이팅으로 팀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팀 선배 강소휘도 “내 2년차 때보다 더 당차고 패기 있다. 블로킹에 막혀도 절대 주눅 들지 않는다. 더 세게 때린다”고 말할 정도다.
센터의 첫 번째 덕목 블로킹의 재미에 눈 뜨고 있다. 지난 시즌 세트 당 0.246개였던 블로킹이 올 시즌 0.408개로 늘었다. 권민지는 “코트 위에서 블로킹이 가장 짜릿하다. 확실히 프로 무대는 공격 속도가 빨라서 블로킹을 잡기가 쉽지 않은데 가끔 한 번씩 잡힐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다. 이런 맛에 센터를 하는가 싶다”고 말했다. 같은 포지션의 선배들에게 상대 세터의 손 모양이나 시선을 읽는 방법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한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도 “센터에서 블로킹을 하다보면 나중에 사이드에선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며 권민지를 독려하고 있다.
언젠가 레프트 공격수로 만개하고 싶다는 꿈도 있다. 그러기 위해 개인적으로 리시브 훈련을 하는 등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같은 코트 위 바로 눈앞에서 이소영, 강소휘의 플레이를 볼 수 있는 건 권민지에게 값진 자산이다. 권민지는 “가끔 소휘언니에게 어떻게 공격이 그렇게 빠를 수 있냐고 놀라서 물을 때가 있다. 코트 위에서 언니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배우는 게 많다. 센터를 하지 않았더라면 얻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팀의 장점을 묻자 권민지는 “나는 뒤에서 소리만 지르면 된다. 언니들이 분위기를 잘 이끌어준다”고 답했다. 여자부 6개 구단 중 가장 젊은 팀 컬러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GS칼텍스는 올 시즌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을 견제할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1위 흥국생명과 2위 GS칼텍스의 대결은 여자부 최고의 흥행카드다. “코트에 들어갈 때 마다 꼭 하나씩 분위기를 올리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권민지의 각오에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GS칼텍스 팬들의 기대도 부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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