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오현도 돌아왔다 [발리볼 비키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1일 1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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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여오현.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현대캐피탈 여오현.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맞다. 여오현(43)도 돌아왔다.

2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2020~2021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선수는 지난해 3월 1일 KB손해보험전 이후 325일 만에 코트로 돌아온 문성민(35)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실에 들어온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 역시 “문성민이 돌아왔다”는 한마디로 총평을 대신했다.

현대캐피탈은 이날 1세트를 먼저 내준 채 경기를 시작했고 2세트서도 6-13으로 끌려가자 최 감독은 코트라는 물 안에 문성민이라는 매기를 풀어 넣으면서 선수들에게 책임감 있게 물장구를 치라는 사인을 보냈다. (최 감독은 2016년 2월 25일 OK저축은행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코트는 물이고 너희는 물고기이니 마음껏 물장구를 치고 오라”고 말했다.)

현대캐피탈 여오현. 동아일보DB
현대캐피탈 여오현. 동아일보DB

이 상황에서 코트를 밟은 건 ‘문캡’ 문성민 혼자가 아니었다. ‘영원한 리베로’ 여오현 플레잉 코치 역시 바로 다음 랠리 때 코트에 들어섰다. 여 코치는 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상대 서브 17개를 받는 동안 실패 없이 리시브 정확 7개를 기록했다(리시브 효율 47.1%). 이날 상대 서브를 10개 이상 받은 선수 중 이보다 리시브 성적이 높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시즌 전체를 봐도 그렇다. 이번 시즌 여 코치는 상대 서브를 207개(리시브 점유율 11.7%) 받으면서 리시브 정확 109번, 리시브 실패 11번을 기록했다(리시브 효율 47.3%). 리시브 점유율이 10% 이상인 선수 가운데 리시브 효율이 제일 높은 선수가 바로 여 코치다.


단, 리빌딩 차원에서 ‘루키 리베로’ 박경민(22)에게 ‘경험치’를 먹여주는 동안 출전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서브 리시브 순위표에서는 여 코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서브 리시브 순위에 이름을 올리려면 점유율 15% 이상이어야 한다.) 여 코치가 상대 서브를 10개 이상 받은 건 지난해 12월 18일 대한항공전 이후 이날이 33일 만에 처음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코트 위에서 만난 여 코치는 “경기에 많이 못 나가다 보니 살찐 것 좀 보라”고 없는 뱃살을 억지로 잡는 시늉을 한 뒤 “벤치를 지키는 게 체력적으로 더 힘들다. (박)경민이가 워낙 잘해주고 있어서 많이 출전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경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민을 제2의 여오현이라고 평가해도 좋겠냐’는 물음에는 “나보다 낫다. 경민이 나이 때 나는 그만큼 못했다. 경험이 쌓이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거다. 붙박이 국가대표 리베로가 될 수 있는 선수”라면서 “나이 차이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내 경험을 하나라도 더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후배들도 오늘 부진했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더 당돌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 그게 선배들이 원하는 모습”이라면서 “선배들도 항상 든든하게 뒤를 받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시즌 여오현은 리그 평균 리시브 효율(35.6%)보다 33% 높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개인 기록을 리그 평균으로 나눈 ‘리시브 효율 +’ 133은 프로 선수 생활 17년 동안 네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순간순간 ‘나이는 못 속인다’ 싶을 때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전성기 못잖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40대가 되면 경험하는 것처럼 여 코치 또한 ‘한 해, 한 해 다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미 느끼고 또 느꼈을 터. 어떤 의미에서 여 코치가 코트 위에서 외치는 ‘파이팅’ 소리는 자신의 40대를 향한 응원가인지도 모른다. 여 코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 응원가를 오래오래 들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여오현이 돌아왔다’로 시작하는 글도 오래오래 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전국에 계신 모든 40대, 특히 자신이 40대가 됐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계실 1982년생 여러분도 모두 파이팅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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