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등판 경기 관중수는?… “숫자로 만드는 야구에 등판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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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경기 기록 정리
‘박스스코어 프로젝트’ 이끄는 오연우씨
한국야구 전경기 전산화 목표… 1만1500경기 입력 나서
의대 졸업후 수학과 학부생으로… “야구와 접목된 수학에 매료
야구팬 여러분의 도움 절실”

부산에서 태어난 오연우 씨는 지난해 사직구장을 안방으로 쓰는 프로야구 팀 롯데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오 씨가 부산 사직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큰 사진). 왼쪽 작은 사진은 ‘박스스코어 프로젝트’ 후원을 요청하는 포스터. 오연우 씨 제공
부산에서 태어난 오연우 씨는 지난해 사직구장을 안방으로 쓰는 프로야구 팀 롯데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오 씨가 부산 사직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큰 사진). 왼쪽 작은 사진은 ‘박스스코어 프로젝트’ 후원을 요청하는 포스터. 오연우 씨 제공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대부’로 통하는 빌 제임스(72)는 자신이 펴내던 격월간지 ‘야구 초록(Baseball Abstract)’ 1983년 10월호에 이렇게 썼다. 팬들이 힘을 모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경기 기록을 정리한 ‘레트로시트(retrosheet)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이제 레트로시트 홈페이지에 가면 메이저리그 원년(1871년)부터 벌어진 모든 경기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임스가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건 대중이 기록지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MLB 공식 통계 산정 업체는 ‘다른 사람 누구도 MLB 기록지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듯 철통 보안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MLB에서 기록지 공개를 거부하는 건 부당하고 불법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제임스는 경기당 야구팬 10명 안팎이 기록을 정리한 다음 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는 “우리가 정보를 모은다면 우리가 그 정보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서 “세이버메트릭스가 위대한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풀뿌리 네트워크를 조직하자”고 제안했다.

○ 박스스코어 프로젝트 시작

레트로시트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한국 야구팬은 재미있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100년도 더 된 19세기 MLB 기록에는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어도 20년 조금 넘은 20세기 프로야구 기록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결사’ 한대화가 정말 찬스에서 강했는지, 선동열의 ‘위기관리 능력’이 정말 당대 최고였는지 기록으로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에 ‘깊이 있는 야구 콘텐츠’를 나누고자 하는 팬들이 모인 ‘야구공작소’에서 ‘박스스코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박스스코어는 야구 기록을 상자 모양으로 정리한 자료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원년(1982년)부터 해마다 모든 프로야구 경기 박스스코어를 정리한 뒤 ‘프로야구 연감’을 통해 공개한다. 박스스코어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모든 프로야구 경기 박스스코어를 통계 처리가 가능하도록 전산화하는 게 목표다.

야구공작소 멤버 오연우 씨(28)는 “현재는 ‘1984년 롯데 최동원의 해태 상대 성적은?’, ‘선동열이 선발 등판한 경기의 관중 수는?’ 같은 질문에 대답하려고 해도 모든 연감을 모아 놓고 최소 몇 시간을 붙잡고 있어야 답을 할 수 있다”며 “박스스코어 프로젝트가 끝나면 간단한 조작만으로 이런 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입력해야 할 경기가 1만1500경기 정도 된다”며 “올해 안에 끝내는 게 목표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사이에 KBO에서 돌연 전산 처리가 끝난 기록을 통째로 공개하지 않는 이상 몇 년이 걸리더라도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 의사 선생님은 야구 환자

부산에서 태어나 롯데 팬인 오 씨는 공중보건의로 복무 중인 ‘의사 선생님’이다. 그는 의대에 진학하면서 프로야구 구단 팀 닥터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러나 막상 의대에 온 뒤 팀 닥터가 되려면 필수로 알아야 하는 뼈나 근육 관련 분야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 씨는 수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4월 국방의 의무를 마치면 다시 대학생이 된다. 공중보건의 신분으로 편입 시험을 치러 한 국립대 수리과학부에 합격했다. 오 씨는 “고교 시절 나는 숫자와 야구를 모두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자연스레 야구와 숫자가 접목된 세이버메트릭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며 “야구와 관련이 더 큰 건 통계학이지만 수학을 바닥까지 파보고 싶다. 앞으로 2년간 통찰력 있는 질문을 찾는 방법을 공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물론 또 다른 목표는 박스스코어 프로젝트 완성이다. 그리고 이 야구 환자는 우리 야구팬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도움을 주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dhdusz@naver.com)로 문의하면 된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프로야구#경기 기록 정리#박스스코어 프로젝트#야구통계학#세이버메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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