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앞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운동선수도 마찬가지다. 노력과 운이 잘 맞아떨어져 현역과 지도자로 평생 한 우물을 파기도 하지만 다른 길을 찾아야 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경우가 많다. 낯선 무대가 힘들어도 유니폼 입고 땀 흘렸던 경험은 큰 힘이 된다.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편견을 오히려 밑천으로 삼아 제2의 인생에서 별이 되길 꿈꾸는 그들의 열정을 소개한다.》
“프로 입단할 때 선수 가이드북에 나온 제 프로필 ‘장래 희망’란에 ‘연예인’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잊고 있었는데 정말 배우가 진짜 운명인 것 같아요.”
프로농구 선수였던 박광재(41)는 이제 코트가 아닌 카메라 앞이 더 자연스럽다. 뮤지컬, 예능,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이자 방송인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8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난 그는 “최근 허재 감독님이 우연히 내가 입단할 때의 선수 가이드북을 보고 그 사실(장래 희망은 연예인)을 알려줬다. 어쩌면 그 길을 향해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던 건가 싶어 놀랐다”고 말했다.
농구 명문인 경복고를 졸업한 그는 연세대 시절 3점슛도 잘 쏘는 센터로 주목받았다. 농구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2003년 프로농구 LG 입단 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새 농구에 회의를 품게 됐다. “LG에서 뛸 때 (현)주엽 형이 있었고 전자랜드에서는 (서)장훈이 형이라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있었다. 프로에 와서 기회를 받지 못하다 보니 농구에 서서히 질려 갔다.” 결국 2011∼2012시즌을 마치고 농구 유니폼을 벗었다. 그는 “은퇴 뒤 반년 동안 아무 생각 안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연세대 모교 코치 제안도 받았으나 거절했다. 농구하는 동안에 감춰졌던 ‘끼’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박광재는 “고교 때 단체로 놀이동산에 놀러 가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잘 춰서 상으로 인형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경복고 근처에 배창호 영화감독 사무실이 있었다. 그는 “유명 배우들이 자주 드나드는 걸 보고 ‘아, 감독님께 잘 보이면 은퇴 후에 캐스팅이 될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딱 그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화려한 댄스를 펼친 적도 있다.
은퇴 후 그는 지인의 추천으로 사극에서 작은 역할을 맡은 것을 계기로 2013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 해적 자포코 역할로 출연했다. 이젠 10편이 넘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자신이 연기한 영상을 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자신과 체형이 비슷하고 선이 굵은 연기가 비슷한 배우 마동석을 롤 모델로 삼아 그의 연기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되짚는 게 습관이 됐다.
이제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이고 예능까지 종합 연예인으로 조금씩 울림을 주기 시작한 그의 목표는 두 가지 인생 ‘덩크슛’을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덩크슛은 한국 농구 발전에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3 대 3 농구선수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두 번째 덩크슛은 배우로 ‘이 역할이라면 박광재가 당연히 나오겠네’라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언젠가 한국농구연맹(KBL) 총재와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있다. “진로에 고민하는 후배 선수들에게 다양한 삶의 길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
프로시절 그는 덩크슛이 한 개도 없다. “대학 1학년 때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덩크슛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는데 그 영향으로 팀이 졌어요. 그 뒤로 덩크슛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이젠 코트 밖에서 호쾌한 덩크슛을 꽂는 모습을 꿈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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