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 겨울 프로야구 선수들이 체감하는 찬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찼다. ‘베테랑’(백전노장)으로 예우 받던 선수들은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도 짐을 싸야했다.
1983년생 고효준도 마찬가지. 세는 나이로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백전노장도 지난시즌 직후 방출 칼바람을 못 피했다. 지난시즌 롯데 마운드가 상대팀 왼손타자들에게 강점이 없었기에 왼손투수 고효준을 올해도 활용할 수 있었지만 구단은 젊은 자원 육성으로 해법을 찾기로 했다.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한 김유영(27), 2021년 2차 전체 1순위로 지명한 김진욱(19) 등 잠재력만 터진다면 대안이 될만한 자원들은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소속팀이 없어져 사실상 은퇴나 마찬가지였지만 고효준은 ‘현역 연장’을 희망했다. 아직도 시속 140km 이상의 공을 던질 힘이 있다고 했다. 부산에 남아 몸을 만들기 시작한 고효준은 지난달에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마련한 제주 서귀포 강창학야구장으로 훈련지를 옮겨 구슬땀을 흘렸다. 그곳에서 하프피칭 단계까지 몸을 끌어올린 고효준은 자신의 투구 영상을 제작해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셀프 홍보에도 나섰다. 이후 현역시절 친구로 지낸 김백만 부산정보고 감독(39)의 배려로 부산으로 간 고효준은 프로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과 ‘같은 꿈’을 꾸며 동고동락했다.
놓치지 않은 희망의 끈이 하늘에 닿은 걸까. 고효준은 ‘기회’를 얻었다. 수도권 A구단 관계자는 “최근 고효준에게 테스트를 제안했다. ‘테스트’라 했지만 경험이 풍부한 선수라 (계약 전) 몸 상태를 확인하자는 취지다. 비 시즌 동안 훈련을 게을리 해 몸이 망가져 있다든지, 우리가 몰랐던 부상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계약은) 90%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고효준은 음력으로도 새해 첫날인 12일 A구단의 2군 캠프에 합류한 뒤 13~17일 5일 간 테스트를 거친다. 결격사유가 없다면 2021시즌 새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를 고효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설날을 앞두고 희소식을 접한 고효준은 “기회를 준 것만으로 정말 감사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몸을 만들었다. 아픈 데는 없다. 테스트에서 증명 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방출 칼바람을 맞은 뒤 현역연장을 선언하고 새 팀을 찾은 베테랑은 한화 출신의 이용규(36·키움), 안영명(37·KT) 둘 뿐이다.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2의 삶을 찾고 있다. 희망의 불씨가 점점 꺼질 무렵 고효준이 코로나19 칼바람을 이겨낸 ‘최고령 생존자’로 이름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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