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BA 첫 3연속 정상 이미래
마니아 아버지 권유로 시작했지만 큰 매력 못 느끼며 지쳐가기만 해
특기생으로 대학 들어갔다 휴학, 자유롭게 치면서 묘미 빠져들어
고질적 팔 부상 딛고 미래 밝혀
“저는 사실 당구가 싫었어요.”
2019년 출범한 프로당구(PBA-LPBA) 첫 ‘트리플 크라운’(3연속 우승) 업적을 달성한 이미래(23·TS·사진)가 던진 솔직한 고백이다. ‘선천적 재능’이나 ‘당구에 대한 열정’ 같은 뻔한 대답은 없었다. 아버지 권유로 처음 큐를 잡았던 초등학교 3학년 이후 10여 년간 도무지 흥미가 붙지 않는 스포츠였던 당구. 하지만 이젠 ‘당구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이미래는 13일 서울 메이필드호텔에서 열린 PBA-LPBA 정규투어 마지막 5차 대회인 웰컴저축은행 웰뱅챔피언십 여자부 결승에서 오수정(38)을 3-2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지난달 3, 4차 대회인 NH농협카드 챔피언십과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 이어 3회 연속 정상에 오르며 PBA 출범 이래 총 12개 대회에서 개인 통산 4번째 우승을 거뒀다. 둘 다 남녀를 통틀어 최초 기록이다. 특히 이번 시즌 5개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 3개를 휩쓸며 상금 6100만 원으로 이 부문 1위다.
이미래의 당구 인생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큐를 잡긴 했어도 별 관심이 없었다. 대기업 임원이었던 아버지는 점심시간마다 당구장을 찾을 정도로 열성적인 당구 마니아였다. 퇴직 후에는 아예 당구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미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당구를 배웠다.
하지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당구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하긴 했어도 당구는 여전히 ‘아버지의 스포츠’였다. 열성적인 아버지가 코치 역할까지 했지만 학업과 대회를 병행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 이미래는 지쳐 가기만 했다. 점심시간에 학과 시험을 치른 뒤 쉴 새 없이 큐가방을 챙겨 경기장으로 달려가는 일도 많았다.
체력적 한계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8년에 2년간 휴학을 신청했던 게 큰 전환점이 됐다. 아버지에게 ‘독립’을 선언한 뒤 그저 쉬고 싶었던 그는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공을 치면서 오히려 당구 재미에 빠져들었다. 아버지의 엄한 지도 덕분에 쌓을 수 있었던 탄탄한 기본기에 다양한 응용기술을 접목하면서 실력도 크게 늘었다.
이번에 우승하기까지는 부상과도 싸워야 했다. 지난달 7일 폭설에 차를 타고 저녁 연습을 나가던 이미래는 뒤에서 미끄러진 차량에 추돌사고가 나 어깨 통증이 악화됐다. 2019년 수술했던 오른쪽 팔의 전완근 근육통까지 겹쳐 공의 힘을 민감하게 조절하는 데 애를 먹었다. 가족에게는 다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사고 사실을 알리지 않고 홀로 견뎌냈다.
여전히 부상 치료를 하고 있는 이미래는 24일부터 열리는 시즌 최종전으로 우승 상금 1억 원이 걸린 월드챔피언십에서 개인 통산 5회 우승에 도전한다. 그는 “‘공을 치기 싫다’고 했던 10여 년간 응원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설 선물을 안겨드린 것 같다. 몸 관리를 잘해서 월드챔피언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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