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는 안되고, 디섐보는 됐던 손상 클럽 교체[김종석의 TNT타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0일 23시 30분


열 받아 망가뜨린 퍼터는 대체 불가
고의가 아니라면 새로 바꿔도 무방

퍼터를 손상시킨 뒤 16번 홀에서 3번 우드로 퍼팅을 하고 있는 김시우(왼쪽 사진). 사진 AP 뉴시스
퍼터를 손상시킨 뒤 16번 홀에서 3번 우드로 퍼팅을 하고 있는 김시우(왼쪽 사진). 사진 AP 뉴시스


한국 골프의 새로운 기대주 김시우(26)가 ‘명인열전’이라는 마스터스에서 기인이라도 된 듯 하다. ‘스푼(3번 우드) 김’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됐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3번 우드 퍼팅으로 4연속 파행진 묘기


김시우는 10일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제85회 마스터스 2라운드 15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퍼터 대신 3번 우드로 퍼팅을 해야 했다. 그래도 4개 홀을 모두 파로 마무리하는 묘기를 펼쳐 지구촌 골프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덕분에 김시우는 이날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여 중간합계 4언더파로 선두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에 3타 뒤진 공동 6위로 마쳤다.

사진 AP 뉴시스
사진 AP 뉴시스


김시우는 왜 15번홀부터 3번 우드로 퍼팅을 해야 했을까. 13번 홀까지 보기 없이 버디만 4개하며 기분 좋은 상승세를 타다가 14번 홀(파4)에서 1.5m 파 퍼팅을 놓친 게 화근이었다. 퍼팅이 계속 짧아 애를 먹던 차에 3퍼팅으로 첫 보기를 했으니 기분이 좋을 리 만무. 전날 공을 물에 빠뜨리며 보기를 한 나쁜 기억이 있던 15번 홀(파5)에서 결국 사달이 났다. 세 번째 샷이었던 칩샷이 홀을 다소 지나쳤다. 골프닷컴은 당시 김시우의 상태를 ‘전홀부터 감정이 안좋다가 화가 끓어 넘쳤다’고 전했다. 뚜껑이 열린 김시우는 동반자의 플레이를 기다리면서 퍼터로 땅을 내리치고 샤프트를 구부린 것으로 전해졌다. 골프 규칙 4.1에 따르면 경기 도중 선수가 고의로 파손시키거나 성능을 변화시킨 클럽은 사용할 수 없다. 결국 김시우는 이 홀부터 그린에 올라 3번 우드를 꺼내 들었다.

사진 AP 뉴시스
사진 AP 뉴시스


●샌드웨지는 퍼터 대용으로 어려워


경기 후 김시우는 3번 우드 퍼팅에 대한 현지 취재진의 집중적인 질문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국내 홍보를 맡고 있는 스포티즌이 전한 해당 상황과 관련한 질의 응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질문 : 퍼터 대신 사용한 것이 3번 우드였나? 아니면 5번 우드였나?

△김시우 : 3번 우드다. 다행히 남은 홀들에서 버디 기회만 남았고, 두 번째 퍼트가 1~2m의 짧은 상황만 남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운이 좋았 것 같다.

△질문: 15번 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김시우 : 그냥 내 샷에 대한 불만이었다. 14번 홀처럼, 15번 홀의 칩 샷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한 것이다.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데 퍼터가 손상되었다.

△질문 :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가?

△김시우 : 골프 코스에선 이런 적은 없었다.

△질문 : 샌드웨지나 다른 클럽을 사용하지 않고, 3번 우드를 사용한 이유는?

△김시우 : 샌드웨지가 더 어렵고, 스핀을 컨트롤하기로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렇게 빠른 그린에서는 더욱더 어렵다. 그래서 3번 우드를 선택했다.

△질문 : 여분의 퍼터가 있는가?

△김시우 :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죄송하다.

애꿎은 퍼터에 화풀이 한 김시우는 대표적인 멘탈 스포츠인 골프에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골프는 무엇보다 에티켓과 매너를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시우를 어릴 적부터 잘 아는 한 지인은 “그런 기질과 넘치는 의욕이 있었기에 오늘의 김시우가 가능했다. 갖가지 최연소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그가 이번에 좋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땅 짚다 부러뜨린 드라이버


PGA챔피언십 경기 도중 샤프트가 부러진 브라이슨 디섐보.
PGA챔피언십 경기 도중 샤프트가 부러진 브라이슨 디섐보.


김시우에 앞서 ‘필드의 물리학자’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체중을 20kg 가까이 불리며 최고 장타자로 거듭난 디섐보는 지난해 8월 PGA챔피언십 1라운드 도중 얼마나 세게 쳤는지 드라이버 헤드가 떨어져 나갔다. 7번 홀에서 강력한 드라이버 티샷을 날린 뒤 티를 줍기 위해 드라이버로 바닥을 가볍게 누르는 순간 샤프트에서 헤드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이 경우는 클럽을 고의로 손상시킨 경우가 아니라고 인정돼 교체가 가능했다. 외부 요인이나 자연적인 힘, 해당 선수나 캐디가 아닌 제3의 인물에 의해 손상된 클럽은 교체가 허락되는 것.

자신의 차에서 새 샤프트를 갖고 와 다시 드라이버를 잡을 수 있었다. 당시 디섐보는 드라이버 2개와 샤프트 3개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PGA투어 경기위원에 따르면 디섐보가 티샷 실수로 격분한 나머지 드라이버를 지면에 세게 내리치다가 샤프트가 부러졌다면 교체는 불가능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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