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때 처음 잡은 라켓… 이제 탁구로 세상을 기쁘게 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0일 03시 00분


[오늘은 샛별 내일은 왕별]도쿄 올림픽 메달 꿈꾸는 신유빈

19일 탁구 유망주 신유빈이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실내체육관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인 2018년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 신유빈은 도쿄 올림픽에서 생애 첫 올림픽 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팬인 그는 훈련이 없는 주말에는 BTS 멤버들의 모습을 십자수로 만들며 휴식을 취한다. 오른쪽 사진은 언니 신수정 씨가 탁구를 치던 경기 군포화산초를 방문해 활짝 웃고 있는 여섯 살 때의 신유빈. 대한탁구협회·신유빈 제공
19일 탁구 유망주 신유빈이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실내체육관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인 2018년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 신유빈은 도쿄 올림픽에서 생애 첫 올림픽 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팬인 그는 훈련이 없는 주말에는 BTS 멤버들의 모습을 십자수로 만들며 휴식을 취한다. 오른쪽 사진은 언니 신수정 씨가 탁구를 치던 경기 군포화산초를 방문해 활짝 웃고 있는 여섯 살 때의 신유빈. 대한탁구협회·신유빈 제공
11개월 만에 탁구 경기에 나선 10대 소녀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라켓을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나 진짜 탁구선수 해야 하나 보다.’

탁구 유망주 신유빈(17·대한항공)에게 들은 꿈 얘기였다. 올해 초 그는 전북 무주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탁구 국가대표 선발 1차전을 앞두고 이런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1년 가까이 대회가 없다가 모처럼 실전 무대에 오른다는 설렘이 컸다. 꿈에서도 공을 치며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어느새 탁구는 운명처럼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 탁구장이 어릴 적 놀이터

“아저씨, 그렇게 하면 안 되죠!” 10여 년 전 경기 수원의 한 탁구장에서 신유빈이 중년의 탁구 동호회 회원을 향해 외쳤다. 대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에게 훈수를 들은 이 회원은 귀엽다는 표정으로 신유빈을 바라봤다.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탁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탁구대 옆에 인형 집을 만들며 놀았다. 시나브로 탁구는 그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는 세 살 때 탁구채를 잡았다. 다섯 살 때 SBS 예능 ‘스타킹’에 출연해 탁구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8년 수원청명중 2학년 때는 탁구 선수라면 꿈이라는 태극 마크를 최연소로 달았다. 그의 아버지 신수현 씨는 전 실업팀 선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앓던 골수염으로 삼성생명 입단 4년 만에 꿈을 접어야 했다. 함께 탁구 선수를 꿈꾸던 언니도 중학생 시절 무릎을 다치면서 고교 진학 뒤 라켓을 놓았다. 그는 “내가 좋아서 탁구를 하는 것도 있지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탁구를) 하는 게 더 큰 것 같다”며 “아빠와 언니가 못다 이룬 꿈을 내가 조금이나마 이뤄주고 싶다”고 말했다.

○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에도

신유빈은 방탄소년단(BTS)의 팬이다. 처음엔 그저 그들이 잘생겨 ‘입덕’(팬으로 입문)했다. 그러다 자신의 마음을 울린 노래를 들었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기다릴 거야. 널 위로해줄. (중략) 넌 괜찮을 거야.’(‘Magic Shop’ 중) 올림픽 메달 도전을 위해 고교 진학을 미루고 대신 실업팀 대한항공 입단을 결심한 1월의 어느 날 아침 일찍 나와 체육관을 청소하다 들은 이 노래는 그의 마음을 쓰다듬어줬다.

당시 그는 부쩍 늘어난 훈련량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매일 4시간 넘게 탁구를 치고 나면 저녁을 먹기 전에 체력 운동 1시간을 추가로 했다. 식사 후에도 야간 연습으로 오후 11시가 넘어 체육관 불을 끄고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실업팀 입단 뒤 정신적인 부담도 커져갔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 한밤중에 자다 깨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아 힘들어”라는 말을 내뱉으며 눈을 떠보면 가위에 눌린 것도 아닌데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힘들어도 버티다 보면 ‘좋은 문’이 활짝 열릴 거라고 믿으며 견뎠다”며 미소 지었다.

○ 당신의 하루에 기쁨을

최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시작한 신유빈의 시선은 ‘꿈의 무대’라는 올림픽을 뛰어넘고 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정말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꼭 탁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자기가 응원하는 사람이 경기에서 이기면 내 하루가 얼마나 좋아지는지 그 기분을 잘 안다. 탁구 선수로서 사람들에게 그런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

이 목표를 그는 어느 정도 이뤘다. 10년 전 레슨하느라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탁구 동호회 회원들이 매일 그를 응원하고 있다. 그가 국가대표에 뽑힐 때나 국제 대회 입상 때마다 그들은 자기 일인 듯 “내가 다 뿌듯하다” “눈물이 난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그는 “코로나19로 답답하고 우울한 분이 많은 것 같다”며 “올림픽뿐 아니라 앞으로 많은 경기에 나가 이겨서 더 많은 분께 기쁨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유빈 프로필
△ 생년월일: 2004년 7월 5일 △ 소속: 대한항공 △ 체격 조건: 168cm, 59kg △ 학력: 군포화산초-수원청명중 △ 세계 랭킹: 85위 △ 전형: 오른손 셰이크핸드 올라운드형 △ 수상 경력: 2019년 체코 혼합복식 1위, 2021년 도쿄 올림픽 선발전 1위, 2021년 세계탁구(WTT) 카타르 스타컨텐더 개인복식 우승 △ 좋아하는 연예인: 방탄소년단(BTS) △ 좋아하는 음식: 삼겹살, 간장게장, 닭발, 마라탕 △ 취미: 십자수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탁구#신유빈#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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