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야수가 4명?…프로야구 ‘수비 시프트’의 세계

  • 뉴시스
  • 입력 2021년 5월 25일 14시 54분


수비 시프트란? 타자에 맞게 수비 위치 극단적 변경
MLB 1946년 윌리엄스 겨냥 수비 시프트 첫 등장
한화, 이번 시즌 연일 파격 시프트로 '관심' 집중
미국 마이너리그서 수비 시프트 제한하기도

2021시즌 KBO리그의 이슈 중 하나는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다.

시프트는 상대 타자의 데이터, 성향 등을 분석해 야수의 위치를 옮기는 수비 전략이다. 좌타자의 당겨치기에 대비해 수비수들이 오른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는 전술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화 이글스의 올 시즌 수비는 그 이상이다. 시범경기부터 KBO리그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파격 시프트를 연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한화는 지난 9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상대 로베르토 라모스 타석에서 외야에 수비 4명을 두는 시프트를 펼쳤다.

중견수 유장혁과 우익수 임종찬 사이에 유격수 하주석이 들어갔다. 좌익수는 장운호가 맡았다. 내야수들은 2루와 3루 쪽을 비우고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잡아당기는 타구가 많은 라모스를 의식한 수비 배치다. 김현수를 상대할 때도 한화는 비슷하게 수비수를 배치했다.

라모스와 LG 김현수를 상대하는 팀들 대부분이 시프트를 가동하지만, 이처럼 외야수 4명의 전략을 선보이는 팀은 흔치 않다.

한화의 수비 시프트는 시시각각 변한다.

볼 카운트에 따라 수비들이 자리를 옮기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다.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는 한화의 수비 시프트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정도다.


수비 시프트, 1964년 메이저리그서 첫 선
시프트는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막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고 알려져 있다.

1946년 7월15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더블헤더 2차전. 루 부드로 클리블랜드 감독은 보스턴 윌리엄스 타석에서 야수들을 일제히 그라운드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스타일의 윌리엄스의 타구는 대다수가 우측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에 부드로 감독은 3루수를 2루 뒤에, 유격수와 2루수는 1루와 2루 사이에 서게 했다. 1루수는 1루 뒤로 배치했다. 우익수는 우측 파울 라인 곁으로 붙어서고, 중견수가 우익수 자리를 맡았다. 텅 빈 그라운드 왼쪽에는 좌익수 한 명만 남겨놨다.

처음에는 ‘부드로 시프트’로 불렸던 이 수비 포메이션은 점차 다른 팀들이 윌리엄스를 상대로 같은 작전을 시도하면서 ‘윌리엄스 시프트’로 더 유명해졌다.

한국프로야구에서의 수비 시프트는 2004년 한화 이글스를 이끌던 유승안 전 감독이 원조로 불린다.

2004년 6월25일 한화는 잠실 두산 베어스전 8회말 1사 만루에 몰리자 내야 수비를 4명에서 5명으로 늘렸다. 좌익수 이영우가 1루에, 1루수 김태균이 2루에 서게 하는 시프트였다. 중견수 고동진은 좌중간, 우익수 최진행은 우중간으로 이동했다.

내야땅볼이 나오면 더블플레이로 연결하려는 계획이었지만, 한화 투수 조규수가 상대 타자 최경환에게 좌선상 안쪽에 떨어지는 2루타를 맞으면서 한화의 새로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KBO리그에서도 정상급 외국인 타자들의 등장과 함께 수비 시프트가 자주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프트의 효과…아웃 카운트 하나 이상을 노린다
수비 시프트의 의도는 명확하다. 타자를 아웃시킬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한쪽을 포기하더라도 타자가 즐겨치는 방향을 택한다. 물론 확률 싸움이기 때문에 100%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수비 시프트가 노리는 또다른 효과는 심리 싸움이다. 시프트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타자에겐 심리적인 압박을 줄 수 있다.

반복되는 시프트를 피해 타자가 빈 공간을 노리다 보면 타격폼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2008~2009년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대표적이다.

페타지니는 적극적으로 잡아당기는 스윙을 했다. 2009년 페타지니의 맹타가 계속되자 타팀들은 페타지니를 막기 위해 수비수들을 우측으로 이동시켰다. 2루수를 외야 잔디 깊숙한 곳에 배치하기도 했다.

집중 견제 속에 페타지니는 밀어치는 타격을 구사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비어 있는 3루로 기습 번트를 대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 시프트를 의식할 수밖에 없던 페타지니는 타격 밸런스가 깨지면서 시즌 초반과 같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었다.

반대로 극단적인 시프트 시도는 ‘투수’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시프트 실패로 비워둔 공간에 안타를 맞으면 심리적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수비 시프트를 선호하지 않는 투수가 마운드에 설 때는 전략을 바꾸기도 한다.

류지현 LG 감독도 이번 시즌을 앞두고 “시프트는 투수들의 마음도 중요하다. 안타를 아웃으로 만드는 것보다 아웃이 안타가 되는 것을 싫어할 수 있다”며 “투수마다 본인들의 생각이 있다. 그런 부분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습번트 등 수비 시프트 파쇄법도 발전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의 싸움은 계속된다. 변화무쌍한 시프트 시도 속에 타자들은 해결책 찾기에 나서고 있다.

NC 다이노스 양의지는 지난 12일 대전 경기에서 한화 야수들이 수비 위치를 왼쪽으로 옮기자 밀어치는 타격으로 1루와 2루 사이를 가르는 안타를 때려냈다.

정상 수비 위치였다면 2루 땅볼이 됐을 타구는 텅 빈 곳으로 날아가 중전 안타가 됐다.

이번 시즌 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KT 위즈 강백호는 기습 번트로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지난 15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상대가 3루를 비우는 시프트를 가동하자, 강백호는 3루쪽으로 기습 번트를 대 안타를 만들었다. 강백호의 기습 번트는 롯데가 똑같은 시프트를 건 4회 또 한 번 나왔다.

강백호는 상대 시프트를 의식해 반대 방향으로 공을 보내는 것에 대해 “그런 타격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며 난색을 보이면서도 “최근 상대 팀들의 수비 시프트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아웃될 수 있는 타구가 안타로 연결될 수 있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가 보편화된 메이저리그에서 최근 이러한 전술에 제동을 걸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올해 마이너리그 더블 A에서는 수비 시프트를 제한하기로 했다.

내야수 4명의 구역을 정하고 투구 전에는 이 구역을 벗어날 수 없게 했다. 경기 시간을 단축하고, 타율을 올리는 등의 효과를 노린 시도다.

이에 대해 수베로 감독은 “야구는 아기자기한 작전의 묘미가 있다”면서 “야구를 더 재미있게 만들려는 시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시프트 금지) 야구를 더 좋은 스포츠로 발전시킬지는 의문”이라고 물음표를 달았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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