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과 29살, 그리고 17살. 언뜻 보면 한데 어울리기 어려운 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늘구멍에 비유되는 대표 선발전을 통과해 ‘금메달’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친 세 남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진혁(40·현대제철), 김우진(29·청주시청), 김제덕(17·경북일고)으로 구성된 한국 양궁 남자 대표팀의 호흡은 완벽했다. 각자 다른 듯하지만 재료마다 감칠맛을 내는 비빔밥 같았다.
세 선수는 26일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 나서기 전부터 각각 올림픽 금메달을 맛 본 선수들이었다. ‘맏형’ 오진혁은 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둘째’ 김우진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팍 남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다. 그리고 ‘막내’ 김제덕은 불과 이틀 전 이번 대회 혼성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막을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1번 사수로 나선 김우진이 빠른 슈팅을 하면서 바람 등의 상황을 파악해 체크해주면 2번 사수 김제덕이 김우진의 말에 따라 자신 있게 시위를 당겼다. 최고참 오진혁은 후배들의 플레이를 뒤에서 지켜 본 뒤 미세 조정을 하며 깔끔한 마무리를 했다.
김제덕은 형님들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폭풍 기합과 파이팅으로 자신감을 끌어 올리며 천재 기질을 발산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10점을 쏠 때마다 김제덕은 상대 앞에서 큰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하면서 포효했고, 선배들은 그런 막내를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홍승진 남자 대표팀 감독이 가끔씩 김제덕에게 ‘조금 자제하라’는 손 동작을 할 정도였다. 준결승 상대였던 일본 선수들이 김제덕의 액션이 거슬리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제덕은 이날도 경기 중에도 각각 23살, 12살 위의 형들에게 슈팅 때 느낀 부분을 적극적으로 얘기했다. 상대 경기를 의식하지 않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다음 공략법을 찾아갔다. 금메달의 가장 큰 고비였던 일본과의 준결승전 승리도 팀워크의 승리였다. 세트스코어 4-4에서 치른 ‘슛 오프’ 첫 발에서 김우진이 9점을 쏘면서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으나 김제덕이 김우진의 조언에 따라 곧바로 정 중앙에 화살을 꽂았다. 김우진은 마지막 사수 오진혁을 위해 남은 시간을 “5, 4, 3…”하는 식으로 알려주기도 했다.
나이 차이는 큰 편이지만 세대 차이는 없었다. 평소 대표팀 생활에서도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간격을 줄이고 또 줄여가며 완전한 ‘원 팀’이 됐다. 오진혁은 “오랫동안 대표팀에 소속되면서 거의 동생들과 생활했다. 동생들과 함께 있는 게 편하고 익숙하다. 나도 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좋다”고 말했다. 김우진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런 마음으로 서로 불편함을 없애면서 팀이 잘 만들어졌다. 제덕이의 파이팅을 진혁 선배가 잘 받아주면서 더 좋은 호흡이 유지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진혁은 “제덕이의 파이팅이 처음에는 낮설기도 했는데 자꾸 듣다보니 긴장이 잘 풀린다. 미리 하겠다고 얘기한 건 아니고 일방적으로 먼저 해 버렸다”며 웃었다. 형들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던 김제덕은 “두 형들로부터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을 많이 배웠다. 경기 중에도 형들과 대화하면서 긴장이 풀렸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이들은 서로 주먹을 맞추고 등을 두드리며 친구처럼 퇴장했다. “제덕아 축하해.” 시상식을 준비하러 라커룸으로 걸어가는 김제덕에게 김우진이 재차 축하 인사를 건넸다. 3명이 경기 때 썼던 부속 장비 등이 담긴 박스는 막내가 아닌 허리에 해당하는 김우진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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