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서정(19·수원시청)이 3년 전 자신의 이름을 건 ‘여서정’ 기술(난도 6.2)을 처음 시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듣던 소리다. 결국 여서정은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이 기술을 완벽히 성공시키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체조 사상 첫 올림픽 메달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아버지 여홍철 경희대 교수(50)에 이은 한국 첫 부녀(父女)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여서정은 1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뜀틀 결선에서 5번째 순서로 나섰다. 여유 있는 미소를 지은 뒤 힘차게 도약해 1차 시기부터 ‘여서정’ 기술을 시도했다. 착지에서 짧게 두 발이 밀리긴 했지만 감점 없는 거의 완벽한 연기였다.
‘여서정’ 기술은 뜀틀을 짚고 두 바퀴 몸을 비틀며 회전(720도 회전)하는 기술이다. 여기에서 반 바퀴만 회전을 더 하면 아버지인 여 교수가 올림픽 메달을 딴 기술인 ‘여2’(뜀틀을 짚고 두 바퀴 반을 비틀며 회전하는 기술·900도 회전)가 된다.
여서정이 1차 시기에서 15.333점(기술점수 6.2, 수행점수 9.133)을 기록하며 이날 출전한 전체 선수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자 주변이 술렁거렸다. 전광판에 1위를 제칠 수 있는 타깃 포인트 기록이 14.833으로 찍혔다. 2차 시기에 신청한 기술은 난도 5.4로 평소 거의 실수 없이 수월하게 해냈던 것이라 금메달까지 바라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서정은 착지에서 세 발을 물러나 14.133점(기술점수 5.4, 수행점수 8.733)을 기록해 평균 14.733점으로 브라질의 헤베카 안드라지(15.083점), 미국의 미케일라 스키너(14.916점)에 이은 3위를 확정지었다.
여서정은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며 가수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여서정은 “여기 오기까지 너무 힘든 시간을 버텨서 ‘그렇게 오랜 시간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라는 가사가 많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체조 선수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9세에 체조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올림픽을 꿈꿨던 소녀는 그렇게 한국 여자 체조 최초의 메달을 수줍게 목에 걸었다. 올림픽 메달을 따게 된다면 “침대에 누웠을 때 바로 보이는 천장에 대롱대롱 달아놓고 잘 때, 일어날 때 매번 볼 것”이라던 그는 이제 매일 메달을 보며 잠들고 메달을 보며 눈을 뜨는, 꿈에 그리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물론 딸의 바람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여 교수 역시 “딸이 더 유명해져서 내가 ‘서정이 아빠’로 불리고 싶다”던 바람을 이루게 됐다.
이제 여서정의 시선은 아버지를 넘어 그리고 다음 올림픽과 신기술에 향해 있다. 여서정은 “아빠가 먼저 체조를 시작했으니 아빠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 않았나 싶다”며 “아빠를 이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때 금메달을 목에 걸면 아버지를 이기게 된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방송 해설을 하며 딸의 경기를 지켜본 여 교수는 “뜀틀은 4초 안에 끝난다. 1년에 1초씩 준비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선수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딸을 다시 만나면) 꼭 안아주겠다. 서정이가 원하는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고 싶다. 딸이 이젠 나를 넘어서고 싶다고 했다는데 당연히 그래야 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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