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케일럽 드레슬(25)은 지난달 26일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며 차세대 수영황제의 탄생을 알렸다. 첫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그는 넓은 윙스팬을 뽐내며 포효했는데 독수리, 악어, 흑곰, 성조기로 왼팔을 빈틈없이 채운 문신이 야성미를 더했다.
하지만 경기 직후 이어진 TV 인터뷰에서 미국 집에 모여 응원하던 가족들과 영상통화가 연결되자 193cm의 거구는 속절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인 매건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울먹이자 드레셀은 주체할 수 없이 흐느꼈고 “다들 너무 고맙다. 사랑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드레셀은 이후 인터뷰에서 “내가 평소에 눈물이 정말 많다. 감정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전화도 매일 못했다”고 폭풍 오열의 배경을 설명했다.
평소 같았으면 세계 각국 선수들의 일가친척은 집이 아닌 경기장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을 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관중으로 치르는 도쿄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어진 풍경이다. 운동선수에게 출전 자체가 영광으로 여겨지는 올림픽 무대는 선수와 가족 모두의 희생 없이 설 수 없는 무대이기에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더욱 특별하다. 하지만 드레셀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새벽까지 모여 응원을 쏟는 가족의 애틋함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마씨모 스타노금메달을 확정지은 순간 가족에게 사랑의 세리머니를 날린 로맨티스트도 있다. 이탈리아의 마씨모 스타노(31)는 5일 삿포로에서 열린 남자 20km 경보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빠는 특이한 퍼포먼스를 했다. 그는 “6개월 된 내 딸 소피, 그리고 아내 파티마를 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언 크라우저같은 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투포환 금메달을 딴 라이언 크라우저(29·미국)도 성조기를 흔들며 미리 준비해온 A4용지를 하나 꺼냈다. 종이에는 ‘할아버지 우리가 해냈어요 2020 올림픽 챔피언’이라고 적혀있었다. 청력을 잃은 할아버지와 평소 필담으로 대화를 나눴던 크라우저가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암투병을 하던 할아버지는 크라우저가 도쿄행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는 대학시절 창던지기 선수를 지냈고 크라우저에게 투포환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며 크라우저는 절친이었던 장대 높이뛰기 선수 샘 캔드릭스가 올림픽 직전 코로나19에 걸려 출전이 무산되자 자신도 언제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순간을 즐기라’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할아버지를 향한 메시지를 적었고 결국 포디엄에서 이 종이를 꺼낼 수 있었다.
육상 1500m의 제이크 위트먼(27·영국)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버지이자 코치인 거프 위트먼이 올림픽 육상 경기장 아나운서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예선 경기에서 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며 경기한 소감을 묻자 “지겨워 죽겠다. 목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다”는 ‘현실아들’다운 답변을 한 그는 이내 “아빠가 소개하는 결선 경기가 기대된다. 정말 특별할 것”이라고 진심을 전했다.
이런 로맨티스트들 사이에서 ‘현실부부’의 모습으로 웃음을 준 이도 있다. 4회연속 올림픽에 나선 카누 스프린트의 사울 크라비오토(37·스페인)는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냐는 질문에 “파리 올림픽이 3년밖에 안 남아서 코치들이 계속하라고 하는데 부인이 절대 안된다고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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