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 거듭된 실패에도 “가보자”
신유빈, 부상에도 포기 않고 도전
국민도 감동의 투혼에 박수 보내
도쿄올림픽 17일간 열전 끝 폐막
“메달 하나도 못 따왔는데 카메라가 너무 많아요.”
한국 탁구 대표 신유빈(17·대한항공)은 2020 도쿄 올림픽 출전을 마치고 돌아오던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취재진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빈손’으로 돌아온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관심이 쏠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 탁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노메달에 그쳤다. 그래도 국민들은 팔꿈치가 탁구대에 쓸려 피를 흘리면서도 반창고 하나만 붙인 채 아무렇지 않게 다시 경기를 이어간 신유빈에게 열광했다.
올림픽은 무조건 금메달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은·동메달을 딴 선수는 죄인처럼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 때 우리는 메달과 무관하게 선수들의 도전 그 자체를 응원하는 법을 배웠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우상혁(25·상무)은 1일 열린 남자 높이뛰기에서 4위를 차지했다. 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며 24년 만에 한국기록(2m35)을 새로 쓴 뒤에도 우상혁은 계속 웃으면서 다음 높이에 도전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가보자”고 외치다 거수경례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그의 얼굴 표정 어디에도 아쉬움은 남아 있지 않았다. 우상혁은 “2m38을 평생의 목표로 잡았는데 올림픽에서 한국기록을 넘은 기념으로 2m39에 도전해 봤다. 내게 선물과도 같은 상황이 올림픽에서 벌어져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8일 폐막한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는 총 12개 세부 종목에서 4위를 기록했다. 여름올림픽 출전 역사상 한국이 4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대회가 도쿄 올림픽이다. 더 낮은 순위를 기록했더라도 괜찮았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그것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년 연기돼 5년의 기다림 끝에 올랐다는 사실은 다음 대회 메달을 꿈꾸게 만드는 ‘희망’이며 한국 스포츠의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안되면 또 도전하면 돼”… ‘과정’을 즐기는 그들
그대 땀과 눈물이 金
한국 수영의 희망으로 떠오른 황선우(18·서울체고)는 메달 없이 귀국하고도 “후련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도 그를 행복하게 만든 요소다.
황선우는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100m 지점까지 세계 최고 기록 페이스로 앞서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자유형 100m 준결선 때는 아시아 기록을 갈아 치우며 한국 선수 최초이자 아시아인으로 65년 만에 결선에 오르기도 했다. 황선우 덕분에 국민들도 ‘목적지’와 ‘결과’가 아닌 ‘경로’와 ‘과정’에 주목했다.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여자부 8위에 오른 서채현(18·서울신정고) 역시 3년 후인 2024 파리 올림픽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이번 대회는 스피드, 볼더링, 리드를 합쳐 순위를 정했지만 파리에서는 서채현이 가장 약한 스피드가 세부 종목으로 분리되기 때문이다. 서채현을 응원하려고 국민들은 기꺼이 스포츠클라이밍 세부 종목별 특성까지 공부했다.
남자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에서 4위에 오르며 한국 다이빙 역사상 최고 올림픽 순위를 남긴 우하람(23·국민체육진흥공단)이나 한국 올림픽 근대5종 여자 개인전 최고 순위(11위) 기록을 갈아 치운 김세희(26·BNK저축은행)도 파리를 꿈꾼다. 우하람은 “연이어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고 있다. 하지만 메달이 없으면 이런 수식어를 스스로 납득하지 못할 것 같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꼭 메달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여자 유도 48kg급 간판 강유정(25·순천시청)은 경기 내용보다 준비 과정으로 화제를 모았다. 강유정은 지난달 24일 대회 첫 경기 시작 2분 만에 탈락했지만 계체 과정에서 150g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하얗게 밀고 나와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줬다. 게다가 강유정은 자신이 탈락한 다음 날 52kg급 대표 박다솔(25·순천시청)의 연습 도우미로 나서 동료의 올림픽 꿈을 응원하기도 했다. 장인화 선수단장은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경기를 즐기고, 져도 최선을 다한 것에 크게 만족하는 어린 선수들의 당당한 모습에 국민들이 매료됐다”고 말했다.
물론 3년 뒤 결과가 달콤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안 되면 또 도전하면 된다. 올림픽 데뷔전이던 2008년 베이징 대회 때 요트 레이저급에서 28위에 자리한 하지민(32·해운대구청)은 이번 대회에서는 7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 요트 역사상 올림픽 최고 순위를 남겼다.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부딪치고 또 부딪쳐 얻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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