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색이 결정되는 마지막 레이저런(육상과 사격이 결합된 종목) 경기를 앞두고 전웅태(26·광주광역시청)와 정진화(32·LH)는 코스 점검을 위해 나란히 도쿄 스타디움을 둘러봤다. 한껏 호흡을 가다듬고는 한 차례 손바닥을 마주치고 포옹을 했다. 국제대회 때마다 전 세계를 누비면서 “올림픽에선 꼭 함께 시상대에 서자”고 했던 약속을 되새겼다.
약 11분에 걸쳐 사격을 하며 3.2km를 도는 혼신의 힘을 다한 레이스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먼저 찾았다. 그들은 땀범벅이 된 채로 다시 한번 부둥켜안았다. 한 명은 메달을 따냈고, 한 명은 메달을 눈앞에서 놓쳤지만 그들에겐 메달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4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정진화는 경기 뒤 “동생이 3등을 해서 메달을 따고 근대5종을 알릴 수 있어서 울컥했다”고 말했다.
○ 근대5종 첫 올림픽 메달 만든 브로맨스
도쿄에서 한국 근대5종 역사상 첫 메달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건 바로 전웅태와 정진화의 ‘브로맨스’(남성 간의 친밀하고 깊은 우정)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7일 일본 도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근대5종 남자 개인전에서 전웅태는 영국의 조지프 충, 이집트의 아흐메드 엘젠디에 이어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해 총점 1470점으로 동메달을 땄다. 정진화(총점 1466점)는 등번호 4번을 달고 뛴 전웅태보다 4초 늦게 들어와 4위에 올랐다.
1912년 근대5종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국의 첫 근대5종 메달이다. 한국은 1964년 도쿄 대회부터 근대5종에 선수를 출전시켜왔다. 시상대에서 내려온 전웅태는 “56년(정확히는 57년) 이루지 못한 한을 풀었다. 일본 하늘로 태극기가 올라가 기쁘다”고 했다.
2012년 전웅태가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한솥밥을 먹은 두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도 충실히 서로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냈다. 레이저런 전까지 종합 4위를 달리던 전웅태는 2위를 하고 있던 정진화와 한동안 2, 3위 경합을 벌였다. 이내 레이저런에 강점이 있는 전웅태가 치고 나왔다. 육상에 강한 엘젠디가 사격에서 예상 밖 선전을 하면서 결국 전웅태가 3위, 정진화가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정진화는 “4등만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4등을 해서 안타깝다”면서도 “다른 사람이 아닌 동생 웅태의 등을 보면서 뛰어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진화의 이야기를 들은 전웅태도 “진화 형은 정말 ‘맘따남(마음이 따뜻한 남자)’”이라며 “진화 형이랑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 만큼 너무 힘들게 운동했다.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세 번째 올림픽을 마친 정진화는 11월 2년간 교제한 일반인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다.
○ 승마, 펜싱 전문 코치의 체계적 훈련
근대5종 새 역사에는 숨은 조력자도 많다. 최은종 감독이 이끈 근대5종 대표팀은 김성진 코치 외에도 펜싱 전문 코치(3명), 승마 전문 코치(2명), 트레이너(2명) 등을 선임해 체계적인 훈련을 했다. 오전 5시 42분 기상 알람을 맞춰놓는다는 전웅태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레이저런, 수영, 승마, 펜싱 순으로 약 2시간씩 훈련해 왔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KISS)도 선수별로 기초, 전문, 정밀체력을 측정해 맞춤형 체력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가족의 든든한 후원이 큰 힘이 됐다.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아들의 경기를 지켜봤다는 아버지 전원휘 씨(54)는 “웅태가 주변의 높은 관심으로 알게 모르게 많은 부담을 느꼈다. 집에서만큼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경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머니 방윤정 씨(53)는 “웅태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에 불고기를 해놓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반려견 웅자, 단풍이도 전웅태를 기다리고 있다.
8일 올림픽 폐회식에서 한국선수단 기수를 맡은 전웅태는 9일 금의환향한다.
근대5종
펜싱(에페), 수영(영법 관계없이 200m), 승마(장애물 비월)를 소화한 뒤 사격과 육상이 결합된 레이저런으로 마무리해 순위를 매긴다. 레이저런은 4개의 서킷으로 구성된다. 1개의 서킷은 육상 800m와 레이저건 사격 5발로 구성된다. 총 3200m를 달리는 동안 사격에서 5발의 명중 시간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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