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못다한 이야기]도쿄올림픽때 스페인-캐나다 등
강팀과 한조 편성돼 선수들 위축… “지더라도 농구답게 하고 오자”
패배의식 없애려 선수들 독려… 한국보다 약했던 日 은메달 차지
“국내 리그 안주해선 실력 안늘어, 장기적 계획으로 선수 키워내야”
한국 여자 농구는 도쿄 올림픽에서 본선 조별리그 3전 전패로 8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의 박수를 받았다. 없던 희망을 생기게 했다. 세계 랭킹 19위인 한국에 ‘넘사벽’처럼 보였던 스페인(2위), 캐나다(4위), 세르비아(9위) 등 강호들과 예상 밖의 접전을 벌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농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49)는 선수들의 패배의식과 자책감을 걷어내는 접근법을 통해 강팀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쌓게 해준 것을 뿌듯해했다. 한국 여름올림픽 사상 구기종목 대표팀 여성 사령탑은 전주원 코치가 최초였다.
18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전 코치는 소속팀으로 돌아와 위성우 감독과 함께 10월 24일 막을 올리는 시즌 대비에 한창이었다. 며칠 전 A4용지 10장 분량의 도쿄 올림픽 결산 보고서를 대한민국농구협회에 제출했다는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전 코치가 선수로 뛰던 시절 한국 여자 농구는 아시아 최강 자리를 다투며 탄탄한 국제경쟁력을 보였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 금메달에 이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주역이기도 하다.
화려한 경력을 쌓은 전 코치와 달리 한국 여자 농구는 국제무대에서 뒷걸음질하고 있다. 그래도 지도자로는 21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밟은 전 코치는 ‘어디 한번 해보자’며 선수들을 자극했다. “첫 소집 때 선수들이 ‘저희가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농구답게 하고 와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우리 모두 세 경기를 진다는 생각은 갖지 말자고 강조했다. 그때 서로가 ‘뭔가 해보자’는 믿음이 형성됐던 것 같다.”
남다른 전술 마련에도 공을 들였다. 전 코치는 “상대 공격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수비 조직력을 강조했다. 공격 훈련 때는 ‘그런 패스하면 걸릴 거야’ ‘거기에 있으면 공을 받을 수 없을 거야’라는 말을 했다. 강팀일수록 수비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한때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된 일본 여자 농구가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한 사실도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전 코치는 “선수층 확대를 위해 학교체육 정상화와 클럽 활성화 등이 절실하다. 어릴 적부터 취미로 농구를 시작해 기본기를 배우고 유망주를 키워 엘리트 선수로 진입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 교류 확대도 강조한 부분이다. 당장은 간판 센터 박지수의 짝이 될 만한 센터가 한 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올림픽에서 박지수를 도와 리바운드와 득점을 높여줄 파워포워드가 있었다면 승패가 바뀌었을 수 있었다는 것.
전 코치는 올림픽 출전이 선수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올림픽은 다른 대회와 비교할 수 없는 압박이 있거든요. ‘원더우먼’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잘 따라 와줬어요. 신체조건과 기량이 월등한 선수들과 맞선 것만으로도 많이 배웠을 겁니다.”
도쿄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더니 눈빛이 반짝거렸다. “일찍 합류하지 못해 미안해하던 (박)지수에게 ‘네가 있어 다 같이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한 것, 세르비아전에서 3점슛을 1개도 못 넣은 강이슬(KB스타즈)이 눈물로 미안해할 때 ‘수비를 너무 잘하고 있어서 안 뺐어’라고 했던 말, 조별리그를 끝내고 선수들에게 ‘서운한 게 있으면 일본에 모두 버려 달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늘’ 하던 것에 머물렀던 저나 선수들에게 경기력 이상으로 값진 경험이었다. 다시 첫발을 내디디는 기분 같다.”
도쿄 올림픽 성화가 꺼진 지 어느새 열흘도 지났지만 그의 가슴속 열정은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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