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 ‘달려라 하니’ 아시죠? 엄마 생각하면서 힘껏 달리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겠어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고…. 아버지가 이 자전거 풀 세트 해주셨는데…. 같이 있지는 못하지만 아버지께 꼭 기쁨을 드리고 싶었는데….”
‘철인(鐵人)’ 이도연(49·전북)이 울었다. 지난달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국제스피드웨이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도로 사이클 여자 독주 H4-5에서 55분42초91로 참가 선수 12명 가운데 10위를 차지한 다음이었다. 5년 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는 이 종목에서는 4위, 도로 경주에서는 은메달을 따낸 이도연이었다.
“아버지가 도쿄 메달을 기대하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성적을 내야 했는데… 미안해요…. 하늘의 아버지 생각하면서 죽을 만큼 달렸어요. 정말 죽을 만큼…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후회 없이 달렸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벅찬 코스였어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어깨가 부서져라 손으로 페달을 돌리고 또 돌렸지만 숨 돌릴 틈 없이 나타나는 오르막은 지독히도 가혹했다.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던 20년 전 그날처럼 말이다.
사고 이후 좌절에 빠져 있던 이도연은 탁구를 시작하면서 활력을 되찾았고, 불혹이 된 2012년에는 육상에 도전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원반·포환·창 던지기에서 모두 한국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듬해에는 사이클 선수로 변신한 뒤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에서 2관왕에 올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창에서 열린 2018 겨울패럴림픽 때는 노르딕 스키 선수로 출전해 7개 종목에 걸쳐 49.1km를 완주하기도 했다. 눈밭에서 수 없이 넘어지고 쓰러지고 돌아와서도 결승선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저 참 예쁘죠?”라며 활짝 웃던 이도연이었다.
이도연이 다시 미소를 되찾은 건 이날 전북 무주군 펜션에 모여 엄마를 응원한 설유선(28), 유준(26), 유희(24) 세 딸 이야기가 나온 다음이었다.
“우리 딸들은 저를 달리게 하는 힘이죠. 우리 딸들 응원 영상 보니까 내일은 정말 무엇이라도 값진 것 하나 가지고 가고 싶어요. 물론 메달 못 가져도 우리 딸들이니까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로서 뭔가 보여주고 싶어요.”
이도연은 1일 여자 개인 경주 H1-4, 2일 혼성 단체전 계주 H1-5에 도전한다. 눈물을 닦아낸 철인은 다시 씽씽 손 페달을 돌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을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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