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T의 창단 첫 통합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유한준(40)은 24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KT 우승 다음날인 19일. 유한준, 박경수 두 베테랑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한 기사(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1119/110340994/1)를 준비하며 유한준과 인터뷰를 했다. 지면기사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없었지만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 은퇴여부에 대해 “가족, 구단 등 여러 사람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 하겠다”고 말했지만 대화 도중 무심코 ‘현역시절에…’ ‘제가 없어도…’라는 표현을 쓸 때 이미 은퇴를 결심한 사람 같았다. 팀원,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던 그의 은퇴 5일전 말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우승 축하드린다.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승을 못 해보고 유니폼을 벗는 선수들도 부지기수라 ‘우승 못하고 은퇴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한국시리즈(KS) 무대에 섰을 때 진짜, 정말로 절실했다. (한국나이)마흔 하나에 우승이라니…. 우리 팀 후배들이 큰 선물을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는 정말 꿈같은 하루였다. 다른 선수들이 기쁠 때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렇다. 기쁜데, 이걸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하하.” ―팀에 ‘KS 경험’(2014년)이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였다. KS를 앞두고 조언해준 게 있나.
“후배들에게 KS를 앞뒀다고 따로 특별한 이야기를 해준 부분은 없었다. 부담 될까봐. 정규시즌 최종경기(순위결정전)에서 상대팀과 부담감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선수들에게 자신감이 생겼다는 걸 느꼈다. 그렇기에 더 해줄 말이 없었다.”
―언제 ‘우승’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와닿았나.
“올 시즌 지명타자였기에 그라운드에서 (경기에 집중하며) 상대만 바라봤던 선수들과 달리 더그아웃에서 경기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첫 확신이 들었던 때는 6월이다. 마운드 전체가 안정감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소위 ‘이길 줄 아는’ 경기를 하기 시작하더니 1위에 올라 그 자리를 며칠 동안 지키고 그랬다. 이때 팀이 정말 강해졌다는 생각과 함께 처음으로 ‘우승할 자격을 갖췄다’는 확신이 생겼다. 4개월 뒤 그 확신은 더 강해졌다. 10월 말에 (삼성에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위기가 찾아왔지 않나. 우리가 준비가 덜 됐다면 무너졌을 거다. 하지만 힘든 순간을 후배들이 극복했다. 순위결정전을 승리(1-0)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도 못 막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 못한 시리즈 스코어(4승 무패)로 우승해 놀랐지만 후배들이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을 때라 못할 것도 없었다.
―다른 전설들처럼 경기를 지배한 적은 안 많아도 항상 꾸준히 잘했다. 비결이 있나.
”은퇴하신 전설들과 비교해 ‘임팩트’가 부족했던 건 인정한다. 하하. 현역시절에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을 고민했던 때가 있었고 좋은 모습을 ‘꾸준히’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딱히 비결이라고 할 건 없었던 거 같다. 하나 꼽아보자면 웨이트 트레이닝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 나이가 들어서는 기술 훈련보다는 웨이트 훈련에 비중을 두고 트레이닝 룸 안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만의 야구관을 정립한 것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 프로생활 초반에는 경기에서 안타를 치면 그냥 ‘쳤나보다’ 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군 제대 후에는 안타 하나를 쳐도 어떤 순간에서 어떻게 대응을 해서 안타를 치게 됐는지를 꼭 복기해봤다. 그런 부분들이 쌓이며 (컨디션이 좋든 안 좋든) 좋은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정규시즌 마지막 10경기 임팩트(타율 0.385 2홈런 6타점)는 상당했다.
”이건 (이강철) 감독님 덕분이다. 하하. 나이가 들어 방망이도 밀리는 거 같고 힘들었는데 감독님께서 꾸준히 신뢰를 주며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배려해줘서 제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2021시즌 타율 0.309). 나이 든 선수들은 안 좋을 때 많이 민감해지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방출, 은퇴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런 부분들이 있는데 믿어주시니까. 꼭 보답하고 싶었다. 정말이다.“ ―우승 팀 징크스 같은 게 있다. 내년을 앞두고 이런 부분도 생각해야 할 텐데.
”KT에서 6시즌 동안 꼴찌도 해보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선수들을 지켜봐왔기에 이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후배들이 우승 한 번 해봤다고 오만해지거나 나태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없어도 보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시즌 막판에 팬들이 안방구장에 오실 수 있게 됐고 ‘은퇴금지’가 적힌 응원판을 들고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도 봤다. 누구를 향해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지 당연히 안다(웃음). 이런 모습을 보며 정말 감사했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마흔 하나인데…. 정말 행복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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